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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치며 장난쳤는데”…‘일본도 사건’ 유족의 명절은

강소영 기자I 2025.01.27 16:54:26

지난해 7월 은평구 아파트서 40대 가장 살해
일본도 갖고 다니다 살해한 백씨 “사형 선고돼야”
유족들은 남편, 아빠 없는 첫 명절…여전히 슬픔 속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담배를 피러 나왔다가 30대 남성이 휘두른 일본도에 두 딸은 둔 가장이 목숨을 잃었다. 유족은 처음으로 남편, 아빠가 없는 명절을 맞이하게 됐다. 피해자의 아내 A씨는 다음 달 백 씨의 선고를 앞두고 “꼭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 소재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살해한 30대 남성 백 모씨의 모습. (사진=뉴시스)
피해자의 아내 A씨(40)는 26일 서울신문을 통해 매년 설 명절에 찾던 시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편에 대한 생각이 커질 것 같아 이번 연휴에는 남편이 묻힌 곳에 가서 아이들과 인사를 할 예정이다.

A씨는 “지난해 설까지만 해도 남편과 전을 부치면서 서로 ‘내가 더 잘한다’며 장난치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A씨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사건 이후 그는 칼이 두려워 요리를 하지 못했고, 첫째 아이는 불안한 마음에 홀로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한다고 했다.

자기 전 담배를 피우는 남편은 사건 당일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고, 너무나 가까웠던 구급차 소리에 베란다를 내다본 이후의 광경은 A씨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A씨는 “남편이 쓰러진 모습이 보였던 창문을 가리기 위해 지금도 매일 커튼을 쳐놓고 산다”고 했다.

그런데도 가족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은 가해자 백 씨는 유족에 사과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고,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다.

백 씨는 지난해 7월 29일 오후 11시 30분쯤 은평구 아파트 정문 앞에서 길이 약 102㎝ 일본도를 휘둘러 같은 아파트 주민 40대 김모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백 씨는 3년 전 직장에서 퇴사한 뒤 정치·경제 기사를 접하다 2023년 10월쯤부터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졌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자주 마주치던 피해자가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중국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했다.

이후 열린 재판에서 백 씨 측 변호인은 살인 혐의에 대해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일본도를 범행에 사용한 데 대해서도 “도검의 사용에 있어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백 씨도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전례 없는 기본권 말살 때문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며 “김건희 재벌집 막내아들로 인해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김건희, 한동훈, 윤석열, CJ 등이 3년 동안 저를 죽이려고 위협해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황당한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까 봐 두렵다”며 “그날 그곳에 다른 주민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희생당했을 것”이라며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을 나타냈다.

앞서 검찰은 2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백 씨에 사형을 구형했다. 백 씨의 망상은 범행 동기였을 뿐 범행 전 살인사건을 검색해 보는 등 심신미약은 아니었다고 본 것이다. 이에 “피고인이 피해자를 처단한다는 분명한 의식과 목적하에 살해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A씨는 입장문을 내고 “아이들이 엄마마저 없는 삶에 서러워할까 죽지도 못하고 미칠 것 같다. 제발 저희 가족을 살려달라”며 “온 세상이 탄핵에 집중돼 있지만 기사 한 줄이라도 가족 억울함을 알려달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의 의무를 다한 제 남편과 믿고 의지해야 할 우리 아이들의 아빠가 살인마 백 씨에게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겼다”며 “내가 죽어야 이 사건에 집중하고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줄까 너무 답답하다”는 마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한 시민의 고귀한 생명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마를 영원히 격리해달라”고 호소했다.

백 씨의 선고기일은 다음달 1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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