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 적정성과 사실관계를 실무 차원에서 따져볼 사안이 미국의 통상 문제 제기로 이어지면서 결국 산업통상부 장관이 직접 미국 측에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전문가들은 쿠팡 사태가 한미 간 통상 현안을 상시적으로 조율할 실무 채널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개별 현안이 통상 갈등으로 커진 뒤 장관이나 정상급에서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한미 통상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특히 한미 통상 의제는 관세를 넘어 비관세장벽과 디지털 규제, 투자, 공급망 등으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고위급 협상에 의존하기보다 실무 단계에서 사실관계와 제도적 쟁점을 먼저 조율하고, 해결되지 않는 핵심 사안만 장관·정상급으로 올리는 이른바 ‘통상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있는 20여개 FTA 채널…통상 현안 조율 창구로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기존 제도적 기반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의체를 꼽는다. 이미 20여개의 분야별 위원회·작업반이 마련돼 운영돼온 만큼 한·미 간 통상 현안을 상시 논의하는 실질적인 ‘통상 플랫폼’으로 재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 발효된 한미 FTA는 관세 철폐를 목적으로 체결됐지만 관세뿐 아니라 서비스·투자·경쟁·노동·환경·디지털 등 다양한 통상 현안을 협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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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FTA를 맺은 다른 국가들은 기존 협정 틀을 통상 현안을 조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토대로 자동차 원산지 규정과 철강·알루미늄뿐 아니라 경제안보, 농업, 노동, 환경, 전자결제 서비스 등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미국의 관세 조치와 USMCA 장기 연장 여부 등을 둘러싼 이견 속에서도 기존 협정 틀을 활용해 미국과 실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김태황 한양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반응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미 FTA를 계속 주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며 “일본이나 유럽연합(EU)에 비해 우리가 갖는 상대적인 비교우위 중 하나가 한미 FTA라는 제도적 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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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의체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대미투자가 본격화하고 분야가 세분화할수록 양국 실무진이 조율해야 할 사안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와 제도 해석이 필요한 사안은 실무협의체에서 먼저 풀고,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만 고위급으로 넘기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관세·대미투자처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은 정상·장관급 채널에서 다루되, 쿠팡·디지털 규제·비관세장벽·원산지 검증처럼 사실관계와 제도 해석이 중요한 문제는 서비스·투자위원회나 별도 작업반에서 먼저 기술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FTA 협의체를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통상정책이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 FTA 밖의 통상법 수단을 통해 집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주요 정책 결정에서 백악관과 상무부 등 핵심 정책 라인의 영향력도 크기 때문이다.
FTA 협의체를 디지털 규제와 비관세장벽 등의 상시 논의 창구로 활용하되 변화한 통상환경에 맞는 새로운 실무 소통망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톱레벨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면 그 밑의 실무 작업반은 생각보다 무력할 수 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상·투자 현안을 중심으로 새로운 실무 소통 채널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기존에 있던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러한 실무 채널은 단순한 정보교환 창구를 넘어 미국의 정책 움직임을 조기에 포착하고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통상 ‘조기경보 시스템’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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