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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식히고 품종 바꿔...고랭지 배추 수급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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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엽 기자I 2026.09.22 04: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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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 기온 상승…재배면적·생산량 모두 감소
더위 견디는 품종에 저온성 필름·미세살수 적용
준고랭지서 9월 출하…여름배추 공급 공백 보완
시설 냉난방·조기경보 확충…농림위성 활용 추진

기후변화가 농업 생산의 전제를 바꾸고 있다. 폭염·가뭄·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기존 주산지의 생산 여건이 악화하고, 오랫동안 이어온 재배 시기와 방식도 흔들리고 있다. 작황 부진은 농가 소득 감소를 넘어 농산물 공급과 가격의 변동성을 키운다. 이제 기후위기는 생산 현장을 넘어 먹거리 물가와 소비자의 장바구니를 좌우하는 문제가 됐다.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하거나 비축 물량을 공급하는 사후 대응만으로는 반복되는 기후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정부와 연구기관, 농가는 달라진 기후를 전제로 재배 적지와 품종, 생산 방식을 조정하고 관측·예측 체계를 보강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는 농업 현장을 찾았다.

[평창=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지난 10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진부시험지. ‘준고랭지 여름배추 조기출하 신작형 현장설명회’가 열린 현장에는 품종과 고온 경감 기술 적용 여부를 달리해 기른 여름배추가 나란히 놓였다. 배추를 반으로 가르자 차이가 선명했다. 기술을 적용한 배추는 속잎이 촘촘히 찼지만 기존 방식으로 기른 배추는 잎 사이가 성겼다. 포기당 무게는 품종에 따라 기존 방식의 최대 세 배에 달했다.

연구진이 품종과 재배기술을 달리한 건 기후위기로 여름배추 주산지인 고랭지의 기온이 오르면서 고온 피해와 생산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더워진 산지에서도 배추를 안정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고온에 견디는 품종과 고온 경감 기술을 결합한 생산 방식을 시험하고 있다. 재배 방식 자체를 바꿔 기후위기에 따른 수급 불안에 생산 단계부터 대응하려는 시도다.

지난 10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진부시험지에서 고온 경감 기술을 적용한 준고랭지 여름배추가 자라고 있다. 밭에는 토양 온도를 낮추는 저온성 필름과 미세살수 장치가 설치돼 있다. (사진=박순엽 기자)
지난 10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진부시험지에서 고온 경감 기술을 적용한 준고랭지 여름배추가 자라고 있다. 밭에는 토양 온도를 낮추는 저온성 필름과 미세살수 장치가 설치돼 있다. (사진=박순엽 기자)
고랭지도 더워졌다…여름배추 생산 기반 ‘흔들’

여름배추는 여름철인 7~9월에 주로 출하되는 배추로, 봄배추와 김장용 가을배추 사이의 공급을 잇는다. 더위에 약한 저온성 작물로 생육에 알맞은 온도는 18~20도다. 기온이 지나치게 오르면 성장이 더뎌지고 속이 제대로 차지 않으며 무름병 등 병 발생 위험도 커진다. 한여름 평지에선 재배하기 어려워 주로 서늘한 고랭지에서 생산한다.

문제는 여름배추 생산을 떠받쳐온 고랭지의 기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의 대관령 관측값을 연대별로 계산하면 연평균 일최고기온은 1990년대 11.3도에서 2000년대 12.4도, 2010년대 12.7도로 상승했다. 최근 5년(2021~2025년)에는 13.7도로 1990년대보다 2.4도 높았다. 배추 생산에 유리했던 서늘한 재배 여건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고랭지 기온이 오르는 사이 배추 생산 기반도 크게 축소됐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강원 지역 고랭지 배추 재배면적은 1996년 1만 793헥타르(㏊)에서 2024년 3483㏊로 67.7% 감소했다. 생산량도 2000년 38만 4715톤(t)에서 2024년 14만 8505t으로 61.4% 줄었다. 약 30년 사이 강원 고랭지 배추밭의 3분의 2가 사라진 셈이다.

생산 지역과 출하 기간이 제한된 여름배추는 다른 계절보다 가격도 높은 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평년 7~9월 배추 도매가격은 포기당 4534원으로,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평균인 2809원의 1.6배다. 폭염·폭우로 생육이 나빠지면 출하량 감소가 곧바로 가격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이 큰 구조다.

기존 고랭지의 생산성을 지키는 동시에 더 높은 기온에서도 배추를 안정적으로 기를 수 있는 생산체계가 필요해진 배경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고랭지 배추 생산성이 떨어질 경우 이를 보완할 방안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생산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이번 사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진부시험지에서 품종과 고온 경감 기술 적용 여부를 달리해 재배한 여름배추가 단면 비교를 위해 놓여 있다. 재배 조건에 따라 속잎의 밀도와 포기 크기에서 차이를 보였다. (사진=박순엽 기자)
지난 10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진부시험지에서 품종과 고온 경감 기술 적용 여부를 달리해 재배한 여름배추가 단면 비교를 위해 놓여 있다. 재배 조건에 따라 속잎의 밀도와 포기 크기에서 차이를 보였다. (사진=박순엽 기자)
품종부터 밭 온도까지 바꾼다…폭염 견디는 배추 실증

농식품부와 농진청은 여름배추의 고온 피해를 줄이기 위해 품종과 밭을 덮는 필름, 물 분사, 토양 관리 기술을 함께 시험하고 있다. 고온에 견디는 품종을 고르고 저온성 필름과 미세살수로 토양과 밭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생육을 돕는 생리활성제와 미생물 퇴비도 활용한다.

시험 결과 저온성 필름을 깐 밭은 일반 검정 필름을 사용한 밭보다 토양 온도가 평균 4~6도 낮았다. 미세한 물방울을 뿌려 주변 열을 식히는 미세살수는 고온·건조한 조건에서 기온을 2.5~4.5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진청 관계자는 “8월 한낮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조건에서도 미세살수 후 배추가 고사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생육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기술은 물 공급과 기계화가 비교적 쉬운 해발 400~600m 준고랭지에서 실증 중이다. 기존 고랭지보다 기온이 1~3도 높은 곳에서도 여름배추를 안정적으로 길러 기후변화에 취약해진 생산 기반을 보완하려는 취지다. 농진청은 수확 시기도 통상 10월 초·중순에서 9월 중하순으로 앞당겼다. 저장 봄배추 소진과 추석 수요가 맞물리는 시기의 공급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준고랭지 시범재배는 농가 단위로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강원·전북 5개 지역 26개 농가가 20.1㏊에서 사업에 참여했고, 올해는 강원·전북·경남·경북 등 4개 도, 6개 지역의 24개 농가가 20㏊에서 배추를 재배하고 있다. 올해 수확 물량 가운데 약 300t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협업해 정부 수매 물량으로 시중에 공급할 계획이다.

재배기술 넘어 관측까지…기후 대응 범위 넓혀

농업 분야의 기후 대응은 현장에서 품종과 재배 방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농장별 기상정보로 재해 위험을 미리 알리고, 위성으로 재배면적과 작황 변화를 살피는 등 관측·예측 체계도 함께 바뀌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생산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고 농가와 정부의 대응 시점을 앞당기려는 움직임이다.

농진청은 지난해 10월 전국 155개 시·군에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했다. 올해 6월 기준 약 5만 농가에 농장별 날씨와 작물별 재해 위험, 대응 요령을 문자 등으로 알리고 있다. 농가는 폭염·가뭄 등이 닥치기 전 관수와 방제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그래픽= 이미나 기자)
지난 7월엔 국내 첫 농림특화 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4호도 발사됐다. 농식품부는 한반도를 3일마다 촬영한 영상에 기상·토양 정보를 결합해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재배면적과 작황, 재해 상황을 파악할 계획이다. 현장 조사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변화를 빠르게 포착해 농업관측과 재해 대응에 활용하고 주요 작물의 생산량 예측 정확도도 높인다는 구상이다.

내년 예산안에서도 원예농산물의 기후 대응 기반을 강화하는 투자가 늘었다. 원예시설의 히트펌프·축열조 등 냉난방 설비를 지원하는 농업에너지이용효율화 예산은 올해 168억원에서 내년 277억원으로 109억원(64.9%) 늘었다. 온실단지에 전기·용수·도로를 조성하는 스마트원예단지기반조성 예산도 48억원에서 111억원으로 63억원(131.3%) 증액됐다.

작황 파악과 공급 조절 예산도 늘었다. 재배면적·작황·가격을 조사·예측하는 농업관측 예산은 올해 192억원에서 내년 209억원으로 17억원(8.9%), 농산물안정생산공급지원 사업의 수급조절 예산은 226억원에서 420억원으로 194억원(85.8%) 확대됐다. 이들 사업은 이상기후에 따른 생산 변화를 조기에 파악하고 수급 충격에 대응하는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정부는 생산 기반과 관측·수급 관리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재배기술과 관측 정보를 현장 대응에 연결한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원예농산물의 생산·공급 불안정성이 커지는 만큼 인공지능(AI)과 첨단기술을 농업에 접목해 이상기후에 선제 대응하겠다”며 “관계기관과 협업해 재배기술 개발·보급과 수급정책의 연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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