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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금융 공룡들이 블록체인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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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I 2026.08.01 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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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규 레이어제로 아시아 총괄

[임종규 레이어제로 아시아 총괄] 미국의 대표 온라인 증권거래 플랫폼 로빈후드(Robinhood)가 이더리움 L2 블록체인 ‘로빈후드 체인(Robinhood Chain)’을 공개했다. 로빈후드는 2000개 이상의 토큰화 주식 상품과 90개 이상의 크립토 자산을 앞세워 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출시 직후 24시간 탈중앙화 거래소 거래량은 5억6000만달러(약 8400억원)를 넘어섰다. 기존 금융 플랫폼이 블록체인을 단순 투자 상품이 아니라 주식과 같은 실물 자산 기반 토큰화를 유통시키는 자체 금융 인프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임종규 레이어제로 아시아 총괄. (사진=레이어제로)
임종규 레이어제로 아시아 총괄. (사진=레이어제로)
이 흐름의 배경에는 규제 환경의 변화가 있다.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가 마련된 데 이어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를 정리하기 위한 클래리티 액트(Clarity Act)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업계에 찾아오는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규제가 완화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기관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생긴다는 데 있다.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대형 금융사와 플랫폼 기업은 더 이상 관망만 할 이유가 없어진다.

최근 주식과 같은 실물 자산 기반 토큰화가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빈후드는 주식 토큰화를 자체 체인 전략과 연결했고, JP모건(J.P. Morgan)과 블랙록(BlackRock)은 토큰화 머니마켓펀드와 블록체인 기반 유동성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전통 금융 자산이 블록체인 위에 올라오는 흐름이 더 이상 파일럿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는 신호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도 판이 바뀌고 있다. 비자(Visa), 스트라이프(Stripe), 마스터카드(Mastercard), 코인베이스(Coinbase) 등 14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한 오픈 스탠다드(Open Standard) 컨소시엄은 스테이블코인 OUSD 출시를 예고했다. 주목할 지점은 또 하나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결제 네트워크, 거래소, 빅테크, 자산운용사가 함께 스테이블코인 유통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테더(Tether)와 써클(Circle)이 주도하던 시장에, 이제는 거대 금융 기업들이 자체 유통 채널을 앞세워 진입하고 있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이 각각 특화된 영역을 가지며 경쟁적·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이는 한국 역시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크립토 이슈가 아니라 통화·결제 인프라의 일부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결국 다음 경쟁은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규제가 명확해지고 금융기관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더 많은 스테이블코인, 예금토큰, 토큰화 펀드, 주식과 같은 실물 자산 기반 토큰화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자산이 늘어날수록 진짜 문제는 발행 이후에 생긴다. 핵심 질문은, 이 자산들이 어느 네트워크에서 유통될 것인가, 어떤 애플리케이션에서 쓰일 것인가, 서로 다른 체인과 금융 서비스 사이를 어떻게 이동하고 결제될 것인가이다.

새로운 체인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인프라를 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고 곧바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아니듯, 스타벅스나 블루보틀 같은 핵심 브랜드가 입점해야 비로소 방문 이유가 생기는 것과 같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체인이 활성화되려면 사용자가 실제로 쓰고 싶은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자산, 디파이 유동성이 들어와야 한다. 170개 이상의 체인과 연결된 레이어제로의 OFT 표준은 이러한 핵심 자산이 어느 네트워크에 입점하고, 어떻게 유통되고, 어디서 활용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수요는 블록체인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앨리엄(Allium)에 따르면, 독립형 크로스체인 메시징 프로토콜들의 최근 30일 기준 거래량은 66억달러(9조9000억원)를 넘어섰고, 이 중 레이어제로가 처리한 금액은 56억9000만달러(8조5350억원)로, 점유율 86%에 해당한다. 1달러가 크로스체인으로 이동할 때 약 86센트가 레이어제로를 거치는 셈이다. 이는 상호운용성 프로토콜이 더 이상 미래의 기술 담론이 아니라, 이미 자산 이동과 결제의 핵심 유통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레이어제로의 역할은 단순히 체인을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의 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장은 하나의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은행은 예금토큰을 만들고, 결제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을 유통하며, 증권사는 토큰화 자산을 제공하고, 자산운용사는 국채와 머니마켓펀드를 블록체인 위에 올릴 것이다. 각자의 상품과 규제 환경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자산이 특정 네트워크에 갇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유통 인프라다.

규제 명확성은 시작일 뿐이다. 클래리티 액트 이후의 시대가 열리면 더 많은 금융기관과 플랫폼 기업이 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장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시대의 핵심 질문은 누가 코인을 발행했는가가 아니다. 그 자산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이동하고 쓰일 수 있느냐다. 금융 공룡들이 블록체인으로 들어오는 지금, 블록체인 산업의 다음 승부처는 발행이 아니라 유통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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