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최종수의 기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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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I 2026.03.10 05:00:00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 기고
단종의 눈물 휘감아돌던 물길, 600년 뒤 동강댐 논란에 시끌
물도 전력도 맡겨나 놓은 듯 지방에만 기대는 정책 반복
수도권 편익 중심은 언제까지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최근 단종의 비극적 생애를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하며 촬영지인 강원 영월군 청령포를 찾는 발길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영월을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故) 안성기 주연의 ‘라디오 스타’도 같은 무대를 공유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사연을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영월을 권력과 인기의 중심에서 떠밀린 이들이 머무르는 ‘소외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그 탓에 영월은 종종 한가한 변방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된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영월이 한국 사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던 때가 있었다. 바로 ‘동강댐’(영월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을 때다. 한적한 변방으로만 여겨지던 이곳은 수도권 용수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가 급부상하며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는 마치 깊은 오지였던 청령포가 왕의 유배지가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역설적인 상황과도 닮아 있다.

1990년대 후반 추진된 동강댐은 한강 수계의 물 부족과 홍수 대응을 이유로 내세운 다목적 댐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태계 훼손, 지질학적 안전성, 그리고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정부는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찬반을 넘어 수도권의 물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부담을 누가 떠안아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댐 건설계획은 취소됐지만 수도권의 편익을 위해 지방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안는 구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은 물과 전력의 자급률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수도권은 국민의 절반이 넘는 약 2600만 명이 팔당댐 수계에 의존하고 있어 한강 상류의 물 공급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전력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전력 수요는 전국의 40%에 달하지만 자급률은 80% 수준에 그친다. 수도권의 부족한 자원을 지방에서 끌어오는 과정에서 댐과 발전시설, 송전망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반복된다. 최근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곳의 연간 전력 예상 소비량은 우리나라 총 전력 소비량의 약 4분의 1에 달하며 용수 수요 또한 인구 238만 명인 대구시의 하루 생활용수량과 맞먹는 수준으로 추산된다.

최근 인공지능(AI) 산업의 확산과 기후위기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AI 확대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수요는 전력망 확충을 압박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현상은 댐 건설 논의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더 짓느냐’가 아니라 늘어나는 부담을 누구에게 어떤 절차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

그렇다면 그 부담을 나누는 원칙은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보다 공급을 늘리기 전에 수요를 줄이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물은 빗물과 지하수 활용, 하수 재이용 등 수원을 다변화하고 에너지는 효율 향상과 분산형 전원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시설 입지를 논의해야 한다면 이익과 위험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숙의할 수 있는 합의 절차를 전제해야 한다. 단순한 일회성 보상을 넘어 지역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는 청령포가 있는 광천골 촌장이 유배지를 자기 마을로 정해 달라며 간절히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팍팍한 산골 살림이지만 한양에서 내려온 고관을 잘 대접하면 나중에 그에 걸맞은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하지만 유배자가 ‘폐위된 임금’이고 그를 수발하는 일이 보상보다 위험이 더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은 순식간에 갈등에 휩싸인다. 수도권에 물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부담을 지방이 떠안는 오늘의 구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수도권의 ‘필요’를 채운다는 이유로 지방에 부담과 위험을 떠넘기는 방식을 더는 반복해선 안 된다. 수도권이 누리는 편익에 걸맞게 지방의 권리를 보장하고 정당한 보상 원칙을 분명히 세워 제도화해야 한다. 필요할 때만 지방을 국정의 전면에 내세우는 수도권 중심의 지방 동원 정책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청령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결국 우리에게 그 전환의 방향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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