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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학생들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고, 원이의 발언을 변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언어가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분류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될 뿐이다.
언어는 원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 내 생각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언어의 역할이다. 말 한마디에 웃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마음을 열기도 한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단어를 들으면 어느 편인지부터 생각한다. 말투를 들으면 정치 성향을 추측한다. 문맥보다 단어가 중요하고, 의도보다 해석이 앞선다. 언어는 서로 소통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를 규정하는 증거처럼 쓰인다. 한 사람이 쓰는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사회가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로 인한 자기검열이다. 내 말이 어떻게 왜곡돼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는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든다. 굳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사투리조차 쓰지 않는 편이 안전하고, 특정 브랜드를 언급해 오해를 사느니 침묵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가 된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데에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정치는 원래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갈등을 줄이기보다 키우는 데 더 익숙하다. 내 편을 결집시키기 위해 상대를 악마화하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정치가 일상을 끌어들이면서 시민들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런 현상을 더욱 증폭시킨다. 짧게 잘린 영상 한 토막, 한 줄짜리 게시물, 캡처된 사진 한 장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앞뒤 맥락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해석만 남는다. 알고리즘은 차분한 설명보다 분노를, 이해보다 확신을 더 빨리 확산시킨다.
의도적으로 특정 집단을 조롱하거나 혐오를 드러내는 표현이라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단어와 모든 행동을 정치적 암호로 읽기 시작하면 사회는 극도로 피곤해진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사회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려면 무엇보다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단어 하나, 말투 하나를 갖고 사람 전체를 재단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토론도, 진정한 소통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요즘 스타벅스 가기가 와이리 무섭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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