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전부터 문제점으로 제기돼 온 지역 편중과 공종 편식은 여전히 숙제다.
20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해외건설수주액(건설사 신고분 기준)은 총 311건 205억6949만8000달러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작년 같은 기간 428건 356억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7년 동기 실적은 이미 달성했다.
전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올초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진출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국내 건설사들의 역량이 집중돼 있던 중동 지역 건설경기가 극도로 냉각되면서 올초부터 발주 자체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올 1분기까지 국내건설사들의 해외건설수주액은 124건 84억달러에 불과했다. 작년 1분기 145건 140억달러의 60% 수준이었으며 2007년 108건 91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2분기에는 121건 46억달러를 수주해 2007년 실적에도 미치지 못했다.
설상가상 낙찰을 받고도 사업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많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올해 국내건설업체의 해외건설 `마수걸이`로 수주했던 1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팜주메이라 빌리지센터 건설 공사는 발주처인 두바이 나킬사의 요청으로 낙찰이 취소되기도 했다.
작년 총 계약금액만 60여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단일 프로젝트로는 국내 건설업계 최대 실적을 올렸던 쿠웨이트국영석유회사(KNPC)의 알주르 정유플랜트 사업도 쿠웨이트 내부 문제로 계약이 취소됐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것은 2분기 말 세계 경제가 다소 회복되면서부터다.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2개월이 채 못되는 기간 동안 국내 건설업체는 총 66건 74억4303만2000달러의 수주고를 올렸다.
때문에 2007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의 `잿빛` 예상은 최근 들어 400억달러 이상의 실적은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로 바뀌었다.
◇ 지역 편중..불황기일수록 심해
해외건설 수주에서 늘 문제점으로 거론돼 온 것이 바로 수주지역이 중동 및 동남아시아지역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의 경기부침에 따라 수주실적도 오락가락했다.
올해 해외건설 분야에서도 이 문제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해당 지역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들 지역의 편중현상은 더 심해졌다. 호황기였던 작년 국내건설업체들은 총수주액 356억달러 가운데 중동에서 208억달러, 동남아시아에서 54억달러 등 262억달러(73%)를 수주했다.
하지만 올해 국내건설업체들은 전체수주액 205억달러 가운데 중동지역에서만 143억달러,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주요국가에서 27억달러를 수주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겨 지역 편중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지역 편중 현상은 결국 국내 건설업체들끼리의 저가 수주 경쟁을 낳고 있다. 국내건설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돼 있는데 발주 물량이 줄어들게 되자 제살깎아 먹기식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 화학·발전·정유플랜트 집중..공종 다변화 필요
작년에 비해 상당히 개선됐지만 수주 실적이 플랜트 등 일부 공종에 집중돼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까지 수주액 205억달러 가운데 산업설비(플랜트)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111억달러)을 넘는다. 작년에는 총 수주액 356억달러 가운데 211억달러가 산업설비(플랜트)분야 관련 프로젝트였다.
플랜트 중에서도 발전·정유·화학플랜트 등 비교적 낮은 기술력을 요하는 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올해 플랜트 수주액(111억달러) 중 총 68억달러가 발전(10억달러)·화학(4억달러)·정유플랜트(정유시설 포함 54억달러)다.
기술력이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가스플랜트 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공종에서 선진국 건설업체들과의 경쟁이 힘들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기술 수준을 높이는 등 플랜트 사업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까지 선진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버거운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꾸준히 엔지니어링 역량을 키워나가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외건설.."돌파구는 있다"
건설업계도 이런 문제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목표로 세웠던 400억달러 수주액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중동지역 경기만 지금처럼 회복세를 보인다면 내년 이후에도 해외건설분야의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업계에서도 제기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국내건설업체들의 해외건설분야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형건설업체 S건설 관계자는 "중국·터키 등 후발 주자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건설업체들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며 "새로운 시장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들 국가들의 건설업체들에게 조만간 입지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비관을 하기에는 이르다. 건설업체들은 시장 다양화와 공종의 다변화를 위해 여전히 노력을 하고 있으며 정부도 자원외교, 글로벌 인프라 펀드 등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견기업들을 중심으로 최근들어 기존의 주택사업이 아닌 신도시건설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해외진출 사례를 늘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 엠코는 지난달 28일 리바아 정부로부터 굽바(Qubbah)市에 5200억원 규모의 공공주택 및 기반시설을 짓는 공사를 수주했으며 성원건설 역시 최근 1조2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리비아 토브루크(Tobruk) 신도시 개발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H건설 관계자는 "올해 수주 목표액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위기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엔지니어링 기술을 확보해 단순 시공이 아닌 EPC(일괄공정) 업체로서 도약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 역시 "기존의 플랜트 위주 사업뿐만 아니라 우리가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신도시 개발 기술 등의 수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자원외교를 통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중남미 등으로의 진출에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어 전망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