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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더 팔면, 내 농사는?”…李대통령이 멈춘 CPTPP의 셈법[청와대 머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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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기자I 2026.10.10 07: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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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조사로 커진 불안…추가 개방 앞두고 속도 조절
상생기금 7000억원 충당해 과거 지원 약속부터 이행
멕시코 관세 부담 줄이고 기존 FTA 보완할 기회
농어민 설득하는 동안 통상 준비도 이어가야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외국에 물건을 더 팔면 나라에는 좋다는데, 우리 농사는 어떻게 되나.”

새로운 무역협정이 나올 때마다 농민들이 품는 의문이다. 수출이 늘어난다는 말만으로 농민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자동차를 더 팔아도 내가 키운 농산물 값이 떨어지면 농가에는 손해다. 시장 개방으로 나라가 얻는 이익과 농민이 감당하는 부담은 그렇게 엇갈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올해 안에 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오는 11월 CPTPP 장관회의에 맞춰 신청을 서두르기보다 농어민과의 신뢰를 먼저 회복하겠다는 판단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 7000억원도 정부 예산으로 채우기로 했다. 과거 시장 개방 때 했던 지원 약속부터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농지 전수조사로 농촌의 불안이 커진 때다. 추가 시장 개방까지 밀어붙이기는 정치적으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농민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보류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신청을 늦추면 우리 기업이 새 통상 혜택을 얻는 시점도 밀릴 수 있다. 이번 결정의 득실을 따지려면 먼저 한국이 왜 CPTPP에 가입하려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FTA 이미 많은데 왜 CPTPP인가

CPTPP는 회원국끼리 관세를 낮추고 무역 규칙을 함께 적용하는 협정이다. 한국은 이미 회원국 대부분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 왜 또 가입하려 하느냐”는 의문이 나올 만하다.

FTA가 있다고 모든 관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협정마다 개방한 품목과 관세를 낮추는 시기, 혜택을 받는 조건이 다르다. 기존 협정에 남아 있는 관세를 CPTPP로 더 낮출 수 있다면 수출기업에 도움이 된다. 물론 추가 혜택이 없는 품목도 있을 수 있다. 협정의 숫자보다 실제 조건을 비교하는 게 중요하다.

멕시코의 경우엔 한국과 FTA가 없는 시장이다. 한국 기업이 경쟁국 기업과 비슷한 가격에 물건을 만들어도 멕시코에 들어갈 때 관세가 더 붙으면 판매 가격에서 밀릴 수 있다. CPTPP 가입은 회원국 기업과의 이런 격차를 줄일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과도 별도의 양자 FTA는 없다. 다만 한국과 일본은 이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함께 가입해 있다. CPTPP 가입으로 일본 시장이 처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이번 CPTPP 가입을 통해 RCEP보다 얼마나 유리한 조건을 더 확보할 수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관세만의 문제도 아니다. 요즘 공장은 여러 나라에서 부품을 들여와 제품을 만든다. 그런데 무역협정의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부품과 생산 과정이 정해진 원산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에서 완성해 수출했다고 모두 한국산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CPTPP는 회원국에서 만든 부품과 생산 과정을 함께 인정한다. 가령 한국이 가입한 뒤 베트남산 부품을 가져와 국내에서 제품을 만들어 캐나다에 수출한다면, 제품별 기준을 충족할 경우 베트남산 부품도 관세 혜택을 받기 위한 계산에 넣을 수 있다. 이것이 ‘원산지 누적’이다. 기업으로서는 부품을 구하고 생산할 선택지가 늘어난다.

RCEP에도 회원국 재료를 함께 인정하는 규칙이 있다. CPTPP는 캐나다·멕시코 등 RCEP 밖의 시장에서도 이를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가입을 검토하는 이유는 기존 FTA를 버리고 새 협정으로 갈아타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존 협정으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9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전북특별자치도연합회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전북특별자치도연합회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000억원 채운 뒤에도 남는 문제

다만 이런 혜택이 농어민의 손실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정부가 지난달 공개한 잠정 분석에 따르면 CPTPP 시행 뒤 15년간 농업 생산액은 연평균 71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수산업은 817억원, 임업은 606억원 감소할 것으로 봤다. 합치면 한 해 평균 약 8500억원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정치지만 농어민이 우려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논란이 된 농지 전수조사는 CPTPP가입에 걸림돌이 됐따. 농지가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와 별개로 농민들은 조사 이후 자신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 걱정한다. 이런 때 추가 시장 개방까지 추진하면 정부가 농촌의 사정을 살피고 있는지부터 묻게 된다. 이번 보류를 농심 달래기로 보는 이유다.

상생기금 부족분을 재정으로 채우겠다는 결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과거 시장 개방 때 지원하겠다는 약속이 충분히 이행되지 않았다면 다음 협정의 이익을 설명해도 농민들이 믿기 어렵다. 정부의 전망보다 이미 겪은 일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7000억원을 채우는 것으로 CPTPP 피해 대책까지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약속을 이행하는 돈과 앞으로 생길 피해를 줄이는 돈은 구분해야 한다. 어떤 품목이 영향을 받는지, 소득 감소를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입을 늦추면서 놓칠 수 있는 이익도 있다. 같은 정부 분석은 CPTPP 시행 뒤 15년간 제조업 생산을 늘리는 효과가 연평균 6조3000억~6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효과는 1조1000억~1조2000억원으로 추정했다.

물론 가입을 1년 미룰 때마다 6조원 넘게 손해 보는 것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일정한 조건을 가정한 가입 효과의 추정치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익은 협상 결과와 기업의 활용에 달려 있다. 그렇더라도 가입으로 얻을 추가 혜택이 있다면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혜택을 누리는 시점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가입 신청을 한다고 바로 관세가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기존 회원국들과 협의하고 시장 개방 조건을 협상해야 한다. 최종 조건에는 회원국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이 가입하기로 결정했다고 원하는 시점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신청 보류는 이 절차의 시작을 늦추는 결정이기도 하다.

농민이 알고 싶은 것은 농업 전체의 생산 감소액보다 내 농사의 사정이다. 내가 키우는 작물의 가격이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소득이 줄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이런 질문에 답이 생겨야 다음 개방을 논의할 수 있다.

기업도 기다릴 준비가 필요하다. 어느 시장에서 어떤 혜택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아야 투자와 생산 계획을 세운다. 공식 신청을 미루더라도 회원국들과 조건을 논의하고 품목별 실익을 확인하는 작업은 이어갈 수 있다. 농어민과 협의하는 동안 통상 준비까지 멈출 필요는 없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언제 가입 문제를 다시 판단할지 중요하다. 어떤 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어느 정도 협의를 거친 뒤 결정할 것인지가 보여야 한다. 신청을 미뤘다는 사실만으로는 농민도 기업도 다음을 준비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지난 약속부터 지키겠다고 했다. 순서는 타당하다. 다만 다음에 CPTPP 가입을 꺼낼 때는 농민에게 내놓을 답이 달라져 있어야 한다. 그때도 “우리 농사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번 보류는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뒤로 미룬 데 그칠 수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와 청와대의 정책 하나는 결국 돈의 흐름을 바꿉니다. 예산은 어디서 나오고, 혜택은 누가 가져가며,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청와대 머니워치’는 정쟁의 언어를 걷어내고 정책의 숫자와 구조, 실제 효과를 경제기자의 눈으로 쉽고 꼼꼼하게 들여다봅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와 청와대의 정책 하나는 결국 돈의 흐름을 바꿉니다. 예산은 어디서 나오고, 혜택은 누가 가져가며,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청와대 머니워치’는 정쟁의 언어를 걷어내고 정책의 숫자와 구조, 실제 효과를 경제기자의 눈으로 쉽고 꼼꼼하게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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