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 폐지된 홈플러스, 20일 시한 앞 벼랑 끝
텅 빈 매대에 PB만 가득…마지막 세일에 긴 줄
"다음주도 문은 열지만…" 팔 물건 없는 강서점
노조 "김병주 MBK 회장, 홈플러스 살려야"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50% 세일이라 베개, 샴푸 같은 걸 담았는데, 마음이 좋지 않죠. 가족들과 푸드코트에서 외식하고 퇴근길 반찬거리도 사던 곳인데… 단순히 매장이 사라지는 걸 넘어 추억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 같아 심란하네요.” (강서구 주민 주부 박모씨·50)지난 11일 오전 찾은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 매장 안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텅 빈 진열대 사이로 손님들이 허리를 숙여 남은 물건을 뒤졌고, 꺼지지 않은 조명 아래 빈 매대가 줄줄이 이어졌다. 곳곳엔 ‘멤버십 50% 할인’ 딱지만 나부꼈다. 홈플러스 본사가 있는 상징적인 점포인 강서점마저 텅 빈 매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매장 입구 가로수엔 “우리의 일터를 지켜주세요”라고 적힌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 노조의 노란 리본 현수막이 흩날렸다.
 | | 1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 3층 생활용품 매장 계산대에 할인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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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새만 남은 코너…재난영화 연상케 한 강서점한때 대형마트 2위였던 홈플러스가 청산의 문턱에 섰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3일 회생 가능성이 낮다며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면서다. 남은 건 오는 20일까지의 즉시항고뿐이다. 이때까지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홈플러스는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는다. 하지만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은 자금 조달 방안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 | 강서점 냉장 식품 코너에서 고객들이 남아 있는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주요 식품 매대는 대부분 비어 있는 모습이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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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서점 식품 매대가 대부분 비어 있다. 거래처 납품 중단 여파로 자체브랜드(PB) 상품 일부만 남아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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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식품매장은 폐업 정리에 들어간 ‘땡처리’ 매장 같았다. 냉장 매대에는 ‘국산 배추김치’ 같은 자체브랜드(PB) 안내판만 걸렸고, 아래 진열대는 텅 비었다. 통조림 코너 한쪽은 심플러스 스위트콘이 채웠지만 맞은편은 검은 철제 선반만 드러냈다. 거래처 납품이 끊긴 자리를 자체 재고로 버티는 셈이다. 남은 것은 칼·도마와 밀폐용기 같은 공산품 정도였다. 5살 자녀와 함께 온 주부 김모(56)씨는 “먹을 건 거의 없고 생활용품만 남았다. 미국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했다.
리빙·생활용품을 파는 3층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1만 7900원짜리 브랜드 슬리퍼가 8950원에, 양말이 5족 5900원에 나오자 손님들이 몰렸다. 비닐을 뜯은 크록스가 바닥에 어수선하게 나뒹굴고, 계산대에는 베개와 이불을 안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다. 물건이 아니라 ‘마지막’을 사러 온 행렬이었다. 더 서늘한 풍경은 한쪽 반려동물 코너였다. 금붕어는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새들은 철장 안에서 지저귀고 있었지만, 정작 매대를 지키는 직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 업계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12일) 전날인 11일이 홈플러스의 마지막 영업일이 될 수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인력 이탈에 이어 신선식품·주류 등 상당수 품목의 납품마저 제때 이뤄지지 않아서다. 특히 시설관리 인력이 사라지면서 안전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3층에서 만난 한 홈플러스 직원은 “퇴직과 연차가 겹치면서 남은 소수의 인원이 모든 일을 도맡고 있다”며 “아직 폐점 관련 공지가 난 것이 없어 다음 주에도 문은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 | 3층 생활용품 매장에서 고객들이 할인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비닐을 뜯은 크록스가 바닥에 어수선하게 나뒹굴고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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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자금 마련해야…홈플러스 최후의 카운트다운다만 다음주 문을 열어도 이날이 사실상 마지막 정상 영업으로 보였다. 고객이 와도 살 물건이 없어서다. 상품은 이미 동났고, 식품 등 기성 브랜드 제조사들은 홈플러스와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패션·외식 업체와 입점점포들도 하나둘씩 발을 빼고 있다. 3층 삼성전자·LG전자 매장은 진열 상품이 자취를 감췄고, 방문 고객에게 온라인 주문 상담만 받고 있었다.
 | | 강서점 입구에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가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노조는 "우리의 일터를 지켜달라"며 회생 지원을 촉구했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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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 어둡다. 13일 이후 20일까지 2000억원이 마련되느냐에 강서점 등 남은 67개 점포의 운명이 걸렸다. 하지만 MBK와 메리츠의 셈법은 엇갈린다. 메리츠는 절반인 1000억원만, 그것도 김병주 MBK 회장의 개인 연대보증을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담보가 충분해 청산해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만큼, 추가 지원은 배임 소지가 있다는 이유다. 반면 MBK는 이미 2200억원을 지원했다며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가 2000억원 전액을 집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장 이탈은 가팔라지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회생 개시 전 2만 3000명이던 직고용 인력은 1만명 이하로 반토막 났다. 배송 차량이 멈추고 물류센터도 사실상 멈춰섰고, 일부 점포엔 단전·단수 공문까지 날아들었다. 청산이 현실화하면 남은 직고용 인력은 물론 입점주와 협력업체까지 수십만명이 생계를 잃는다. 결국 MBK 김병주 회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결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 관계자는 “2000억원의 DIP(긴급운영자금)만 지원됐어도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날 이유는 없었다”며 “김병주 MBK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현장 붕괴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홈플러스를 인수한 김병주 회장이 회사를 살려야 한다”며 “노동자와 입점점주 등 30만명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