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에 성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목소리를 높였고 탄핵안 의결을 무산시킨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광화문 일대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야당이 매주 토요일 탄핵안 표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이 같은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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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주축으로 한 진보성향 단체들은 지난 7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범국민 촛불 대행진’을 열었다. 주최 측은 이날 국회 일대에 총 20만명 규모의 집회를 신고한 바 있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몰리면서 경찰은 교통 통제 구역을 확대했다. 결국 국회 앞 여의대로 전 차선을 비롯해 ‘서여의도’라고 불리는 국회 일대를 모두 규탄 집회 참석 인원들이 채웠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100만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비공식 추산으로는 15만9000명이다.
여의도 일대에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에는 지하철이 서지 않고 통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길역 등 인근에서 내린 시민들의 도보로 국회로 향하는 행렬이 길게 늘어서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와 함께 부산과 대구, 광주, 제주 등 주요 도시에서도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도 집회를 찾은 시민들은 ‘내란죄 윤석열 탄핵’, ‘윤석열을 탄핵하라’ 등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헌법파괴, 불법계엄.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경기 김포에서 아내와 두 딸과 국회를 찾았다는 김모(42)씨는 “2024년에 계엄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며 “이번 계엄 사태를 보고 반드시 (정권 규탄 집회에) 나와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집회를 주도한 시민·노동단체들은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이 치욕스러운 순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윤석열을 탄핵하고 체포해 감옥에 보내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진영종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역시 “고위공무원(윤석열) 하나 잘못 뽑아 나라가 아수라장이 돼 버렸다”며 “국민의 힘으로 그 공무원을 해고하고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보내고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자”고 했다.
국회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여당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시민들은 여당 의원들이 사실상 투표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탄식과 분노를 쏟아냈다. 당시 순식간에 시민들이 차량, 경찰과 함께 뒤섞이며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민의힘 해체’를 목놓아 외치던 김철구(50)씨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들은 오늘이 끝이 아닌 시작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똑똑히 알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우원식 국회의장이 표결 미달로 인한 투표 불성립을 선언하자 집회 현장에선 비명이 쏟아졌다. ‘국민의힘을 해체하라’, ‘국민의힘은 내란동조범’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빗발쳤고 끝내 눈물을 터트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주최 측은 “국민의힘이 탄핵안을 부결시켜 윤석열의 대통령직을 유지한 것은 내란동조 행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며 맞불 집회가 열렸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자유통일당,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 등 보수 성향 단체 주도로 열린 이 집회는 경찰 비공식 추산 집계로 2만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내자“,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사실상 탄핵안 표결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윤석열 만세“, ”자유국가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본회의가 끝나기 전에 해산했다.
당분간 야당은 임시회를 계속 열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재발의해 주말마다 표결에 부친다는 입장이어서 이 같은 집회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의도 탄핵 집회를 추진한 주최 측은 입장문을 통해 “야당들이 다음 주 다시 탄핵안을 발의한다고 한다”며 “우리는 윤석열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매일 국회 앞에서 촛불을 들고 주말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규모 촛불을 들어 올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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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규모 집회에서는 MZ세대의 새로운 시위 문화가 이목을 끌었다. 과거 손에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 탄핵 집회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면 아이돌 콘서트에서 사용하는 응원봉이나 LED 머리띠 등을 두르고 집회에 나선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들은 ‘내가 제일 잘나가(2ne1)’·‘아파트(로제)’·‘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삐딱하게’ 등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자 가장 크게 따라 불렀고 각자 준비해 온 콘서트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중장년층 시민들도 함께 어우러지며 자칫 험악할 수 있는 집회 현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20대 여성 황모씨는 “이런 시위 문화가 오히려 집회 참여를 더욱 독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과격 시위보다 훨씬 안전하기도 하지 않느냐”고 했다. 친구 2명과 함께 각기 다른 아이돌 응원봉 3개를 챙겨 집회에 참가한 20대 여성 조모씨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때 촛불 들고 나왔었는데 불이 잘 꺼져서 이번엔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며 “저들에게 겨울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이 팬들을 위해 카페나 식당에 ‘선결제’를 하는 문화가 이날 집회 현장에서 보여지기도 했다.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옛 트위터)에는 국회 인근 카페, 빵집, 식당 등에 대량의 음식을 선결제 해뒀다는 시민들의 게시글이 이어졌다. 예를 들면 ‘베이글과 크림치즈, 커피 40세트를 어떤 매장에 선결제 했으니 아무개의 이름을 대고 수령해 사용해달라’는 내용이다. 메뉴도 국밥이나 김치찌개, 커피 등도 다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