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급선회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청와대재단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7월, 개방된 청와대를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해 이 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정부는 약 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고, 전시 콘텐츠 기획 및 관람 동선 운영을 위한 인력 44명을 구성했다. 재단은 ‘청와대를 일상 속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우며 야간 전시, 음악회, 미디어 콘텐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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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급격한 정책 변화에 따른 행정적 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문체부는 재단을 어떻게 정리할지, 인력은 어디로 전환할지, 집행된 예산은 어떻게 정산할지에 대해 일절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치적 결정은 있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행정적 설계나 후속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재단은 지금, 행정 공백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단 인력을 한국관광공사가 운영 중인 청와대 사랑채 쪽으로 흡수하자는 대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실행 가능성은 낮다. 사랑채는 소규모 유지관리 인력이 중심이며, 청와대재단은 콘텐츠 기획과 전시 운영에 특화된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단순한 인력 재배치는 조직 효율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청와대 개방 정책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정치적 상징성에 치우친 설계, 예측 부족한 운영 체계, 부족한 콘텐츠 투자 등은 운영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초기에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고 해서, 정책의 실험성과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자산을 아무런 평가 없이 폐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청와대재단이 해체되더라도, 예산 집행 내역과 사업 성과, 그리고 지난 2년간 축적한 전시 콘텐츠와 기획 자산은 반드시 기록되고 공개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공행정의 기본이며, 다음 정책 실험에 신뢰를 더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정치는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행정은 그 선택의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청와대재단 해체는 단순한 조직 폐지가 아니라, 정부 정책 신뢰도에 대한 시험대다. 정권이 정책을 바꿨다면, 그 결과와 후속 조치까지 책임지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청와대재단에서 일했던 직원들과 그 가족도 이 과정에서 결코 소외돼서는 안 된다. 이들은 국정 방향에 맞춰 자신의 경력을 옮기고 생활 기반을 전환하며 조직에 참여했다. 이제 그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국가의 정책을 실행해온 실무자들이다. 조직은 해체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공공행정의 실패는 잘못된 정책이 아니라 무책임한 정리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