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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재정개혁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기대는 컸지만 결과는 늘 아쉬웠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 공공부문 구조개혁을 추진하며 재정 기반을 다졌고 노무현 정부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dBrain+)을 통해 재정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효율을 강조했지만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집중하며 구조개혁에는 한계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가계부를 통해 재정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보조금 전수 조사를 통해 부정수급을 줄이며 재정 책임성을 강화하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 속에서 확장재정을 선택했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원에서 2022년 1067조원까지 늘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약 36%에서 50% 가까이 상승했다. 위기 대응이라는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구조개혁을 병행하지 못한 점은 분명한 한계다. 윤석열 정부 역시 건전재정을 내세웠지만 연구개발(R&D) 예산을 포함한 일률적 삭감과 같은 거친 방식은 정책의 정교함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결국 교훈은 명확하다. 재정개혁은 ‘얼마나 줄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줄이느냐’의 문제다. 방향이 틀리면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첫째, 제로 베이스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재정은 전년 대비 증감 방식이 관행이었다. 이 구조에서는 기존 사업이 자연스럽게 살아남는다. 실제로 상당수 사업은 시작되면 종료되기보다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출발점을 바꿔야 한다. “이 사업이 지금도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매년 다시 던져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는 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는 한 재정의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둘째, 평가와 예산을 반드시 연결해야 한다. 과거에도 수많은 평가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 결과가 예산을 바꾸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유는 뻔하다. 정치와 이해관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원칙이 아니라 ‘룰’이다. 예를 들어 2년 연속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일정 수준 이하의 성과를 보인 사업은 자동으로 구조조정 대상에 올리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평가가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 재정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셋째, 일괄 삭감이라는 쉬운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10% 감축, 15% 감축과 같은 방식은 추진하기 쉽지만 그만큼 비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성과가 높은 사업도 함께 줄이기 때문이다. 재정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답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각 재정사업에 대한 철저한 사후평가를 전제해야 한다. 무엇이 효과를 냈고 무엇이 실패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따져야만 제대로 된 선택이 가능하다. 그 위에서 성과가 좋은 사업은 확대하고 성과가 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넷째, 국민 설득과 참여가 핵심이다. 재정개혁은 누군가의 몫을 줄이는 일이다. 반발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더 투명해야 하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2016년부터 개발해서 운영하는 ‘피스컬 십 게임’(Fiscal Ship Game)처럼 국민이 직접 국가 목표를 정하고 세금과 지출을 조합해 보는 방식은 그 자체로 강력한 교육이자 설득이다. 우리 역시 지난해 정책평가연구원이 개발한 ‘나라살림게임’과 같은 시도를 통해 재정 문제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 줄여야 하는지, 줄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섯째, ‘보이지 않는 예산’까지 함께 봐야 한다. 세출만 줄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각종 조세감면을 통한 조세지출도 사실상 재정지출과 동일한 성격을 띤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조세지출 규모는 최근 연간 70조~80조원 수준에 이른다. 이는 단일 부처 예산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그럼에도 관리와 평가는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재정지출과 조세지출을 통합적으로 평가해야 진정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이 원칙들이 지켜진다면 효과는 분명하다. 상당한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동시에 빠르게 늘어나는 나랏빚의 속도를 잡고 미래세대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재정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어디에 쓰느냐는 결국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직결된다. 이번 정부의 재정개혁 방향은 분명 옳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는가다. 정치적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일관성이다. 과학적으로 줄이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한다면 이번 재정개혁은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또 하나의 미완으로 남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