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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해방의 날’이라고 부르며 미국과 무역흑자를 기록한 67개국에는 11~50%에 달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발표했다. 애초 교역국의 관세율, 비관세장벽, 환율, 부가세 등을 종합적으로 정교하게 상호관세율을 계산하겠다는 발표와 달리 상호관세율은 주먹구구식으로 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로 상품 관세율이 사실상 0%에 불과하지만, 무려 25%의 관세율이 부과됐다. 미국과 무역흑자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예상보다 강한 관세 충격에 미국 국채금리가 사흘 만에 50bp(1bp=0.01%포인트) 가량 치솟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뜸 90일간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했다. 교역국들은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오락가락한 관세 정책에 글로벌기업들은 모든 경영계획을 ‘올스톱’한 상태다. 기업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정작 미국이 초점을 맞춰야 할 중국과 관세 전쟁에서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애초 마약 차단 문제로 10%씩 두차례 관세율을 올리더니, 상호관세율을 34%로 던졌고, 그 이후 중국의 보복을 이유로 누적 관세율을 무려 145%까지 상향했다. 사실상 미중 간 무역이 차단되는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빅딜’을 원하지만, 이미 트럼프 1기를 경험하면서 학습효과를 키운 중국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시장 개방, 무역적자 해소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선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카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미국 예외주의’는 없어지고, 주식뿐만 아니라 국채, 달러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매도되는 ‘셀 USA’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 달러가치는 트럼프 취임 이후 약 9% 하락하며, 미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 최근 수십년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반 달러가 강세를 보인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융시장의 보루로 간주되는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재차 흔드는 것도 투자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BMO 글로벌 자산운용의 비판 라이 전무이사는 “미국 달러의 보편성과 국제 무역·금융에서의 역할은 미국 제도에 대한 깊은 신뢰, 낮은 무역 및 자본 장벽, 예측 가능한 외교 정책 덕분이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신뢰가 약화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자산 배분에 변화를 시사한다. 우리는 이것이 구조적 변화라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