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꺼낸 中, 엔비디아 반독점 위반 조사…"트럼프 견제책"(종합)

김상윤 기자I 2024.12.10 07:54:36

시장총국, 엔비디아 반독점 조사 착수 밝혀
구체적 반독점 위반 혐의는 밝히지 않아
이스라엘 칩회사 인수시 조건 미준수 혐의도
최첨단 칩 기술 놓고 미중 갈등 심화 가능성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중국 정부가 인공지능(AI)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에 대해 반독점 위반 혐의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이 중국의 최첨단 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조치다. 내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중국이 무역 및 기술 제재의 표적이 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경쟁당국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하 시장총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반독점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엔비디아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시장 총국은 엔비디아가 중국의 반독점법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아울러 시장총국은 엔비디아가 이스라엘 반도체 제조사이자 고성능 컴퓨팅(HPC) 네트워크 기술 업체인 멜라녹스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총국이 제시한 조건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2020년 데이터센터 사업 강화를 위해 멜라녹스를 69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멜라녹스는 고성능 초고속 저지연에 강점을 가진 서버·스토리지를 위한 인피니밴드 인터커넥트 솔루션과 데이터센터를 위한 이더넷 스위칭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엔비디아는 당시 이번 인수로 데이터센터 구축에서 더 우수한 성능과 컴퓨팅 리소스 활용, 운용비용 절감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시장총국은 멜라녹스는 HPC 시장과 하이퍼스케일·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멜라녹스와 엔비디아가 결합할 경우 반독점 우려가 있다고 보고 특정 조건을 달아 승인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여된 조건에는 △묶음 상품 판매 금지 △불합리한 거래 조건·구매 제한 △개별 제품 구매 고객에 대한 차별적 대우 금지 등이 담겼다. 엔비디아와 멜라녹스가 중국에 그래픽 처리 장치와 네트워킹 장비를 중단없이 공급한다는 조건 하에 인수를 승인했는데, 중국 고객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과징금 등 제재하겠다는 게 시장총국의 판단으로 보인다. 중국의 반독점법에 따르면 법을 위반할 경우 전년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엔비디아는 한때 중국 AI칩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한 독점 기업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규제와 함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부상으로 현재는 점유율이 빠르게 줄고 있다. 지난 4분기 엔비디아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2년 전 26%보다 뚝 떨어졌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이번 조치가 엔비디아에 미칠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테크널리시스 리서치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밥 오도넬은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 대부분이 이미 중국으로의 판매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조사가) 특히 단기적으로는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이번 소식이 최근 반도체칩과 관련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이다. 지난 2일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장비업체를 비롯해 AI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대상으로 한 추가 대중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중국은 보복 차원에서 중국산 갈륨, 게르마늄 등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미국 수출을 금지하기로 하면서 최첨단 칩을 둘러싼 양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중국 시장총국이 엔비디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히지도 않았고, 2020년 인수 승인 이후 6년이나 지난 시점에 문제를 제기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며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이 무역 및 기술 제재의 표적이 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조치”라고 전했다.

정치 리스크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 그룹의 이안 브레머 사장은 WSJ에 “중국의 움직임이 미국 새 행정부와의 그랜드 바겐 협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트럼프 팀이 협상할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며, 현재로서는 그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 소식에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55% 하락한 138.8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