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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화위지’ 된 필리버스터... 남용 막되 소수파 권리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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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나 기자I 2026.08.20 05: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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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
‘필리버스터’ 취지 되살리려면
소수당 발언·타협 위해 도입했지만
다수당 강행·소수당 지연 반복
22대 국회서만 34건 ‘역대 최다’
법 개정과 함께 협치 회복 우선
정족수 규정으로 경청 유도해야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는 다수결에 맞서 소수파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제22대 국회 들어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순기능도 분명하다. 필리버스터의 본래 의미와 이를 되살릴 해법을 짚어봤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과장] 본회의 단상에 올라 다수파의 횡포에 맞서 의원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적 지향을 발언시간 제한 없이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 필리버스터의 역할에 대한 이상적인 설명이다. 1964년 4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준연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5시간 19분 동안의 발언은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성공적 필리버스터로 기록되어 있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유신체제에서 국회법 전부개정을 통해 폐지되었다가 2012년에 국회법 개정을 통해 부활하였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과장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과장
(그래픽=김일환 기자)
(그래픽=김일환 기자)
43년만인 2016년 4월에 첫 필리버스터가 테러방지법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야당(소수당) 의원 38명은 192시간 25분 동안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 권한 확대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는 소수당의 합법적 저항권을 보장하고 의회주의 본래의 기능인 ‘말의 정치’를 부활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이때는 지금처럼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다수당 의원이 1인도 없었다.

무제한토론 제도의 도입 목적은 다수결이 지배하는 국회에서 소수파에게 충분한 의견 개진 기회를 보장하고 원내 타협과 협상을 촉진하는 데 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지 14년이 지나면서 애초의 취지가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제22대 국회 들어 여야가 대립하는 쟁점법안은 대부분 무제한토론이 실시됐지만 무제한토론 중에 본회의장에 재석한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7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7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필리버스터가 본래 기능을 하려면 상대 당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정치적 파트너로 존중하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정당양극화가 심각한 국가로 손꼽히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매우 요원한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무제한토론은 쟁점법안의 표결을 24시간 지연시키는 것 이외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찾기 어렵다.

2025년 정기국회에서 국민의힘이 쟁점 법안뿐 아니라 여야가 합의한 민생 법안에도 무제한토론을 신청하겠다고 밝히자 민주당은 본회의 의사정족수 규정을 무제한토론에도 적용하는 국회법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국회법을 고치는 것만으로 필리버스터의 도입 목적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수당은 언젠가 자신이 소수당이 됐을 때 필리버스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소수당은 향후 다수당이 됐을 때 지금의 필리버스터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당간 상호존중과 협력의 정치문화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무제한토론 제도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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