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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에서도 한국식 기업문화를 흔히 볼 수 있다. 대주주는 해외의 글로벌 기업이지만 한국 지사의 임직원 다수가 우리나라 사람이거나 원래 우리나라 토종기업이었는데 외국 기업에 인수됐다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관습에 익숙할 것이다. 호칭뿐만 아니라, 회의 때 자리 배치, 퇴근 눈치 보기에도 연공서열이 남아 있다. 승진 심사 때도 나이를 고려하게 된다. 이메일 보낼 때 받는사람 넣는 순서까지 신경 쓰는 사람도 있다.
원래 타운홀은 경영진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자는 취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형식과 의전을 중요시하는 행사가 되기도 한다. 동영상과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높은 사람들의 소개 순서와 동선까지 촘촘하게 챙긴다.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이 없어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질문할 사람들을 미리 정해 연습을 시킨다. 그리고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하며 작은 실수도 막기 위해 점검을 반복한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한혼양재(韓魂洋才)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거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대에 나온 말인데 한국의 정신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과 체제를 융합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조직의 매트릭스 구조, 계량적 성과 측정, 개인주의와 사생활 보호 등 서양식 시스템을 수용하면서도 구석구석 한국의 정서와 관례가 자리 잡고 있다. 업무 규정은 서양식이고 이메일도 영어로 쓰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예의와 위계가 남아 있다.
다른 나라와 교류가 늘어나니 글로벌 스탠다드로 일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서양식 기업문화가 항상 앞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기업문화를 경험해 보고서는 부러워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무엇보다 강력한 추진력과 빠른 일처리가 주목을 받는다. 또 우리나라 직원들의 폭넓은 지식과 정확한 일솜씨는 다른 나라에서 흔하지 않아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다. 효율적이고 정성이 가득 담긴 고객 응대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위직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은 윗사람을 잘 모시는 한국의 문화를 맘에 들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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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나 동양이나 실제 일은 사람 사이의 신뢰를 통해 풀리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기업에서도 이메일만 주고받다가 직접 만나 식사라도 하며 친분을 쌓으면 그 다음부터는 업무 협조가 훨씬 원활해진다. 개인의 사생활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편하고 자유롭기는 하지만 공동 목표를 지향하는 회사에서는 동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물론 이런 모습이 지나칠 경우 관계에 치중하해 부조리가 생기고 조직이 권위적으로 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은 ‘완전한 외국 회사’와는 다르다. 한혼양재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 퓨전이 순수한 외국식 기업문화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만 하기 보다는 우리나라 기업문화의 장점도 잘 살렸으면 한다.
■최기훈 이사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나은행, 미래에셋증권, 피델리티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SC제일은행 등 금융권에서 30여 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국내 최대 체험학습 플랫폼 아자스쿨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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