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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박씨를 포함한 작업자 5명은 한 건물의 외벽을 나눠 맡아 작업하고 있었다. 건물의 동·서·남·북 면으로 흩어져 각자 로프에 몸을 맡긴 채 일을 이어가던 중 다른 쪽에서 짧은 비명과 함께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박씨는 직감적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곧바로 119에 신고했지만 사고 지점으로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동료가 작업하던 곳은 박씨가 있던 면의 반대편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건물 모퉁이를 돌아 사고 현장으로 향한 박씨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진 동료의 발이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동료는 끝내 숨졌다. 그날 이후 박씨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박씨는 “지금도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다른 사람은 구분하지 못할 수 있지만 저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떨어지는 소리와 장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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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에는 로프 작업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교육기관을 찾기 어려웠다. 마침 함께 일하던 친구가 로프를 타는 법을 조금 알고 있었다.
박씨가 받은 첫 교육은 컨테이너 위에서 이뤄졌다.
“컨테이너에서 30분 정도 배웠어요.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친구와 5층짜리 건물 유리창을 닦으러 갔습니다”
30분 동안 배운 기술로 수십 미터 높이의 건물 외벽에 매달렸다. 온몸에 힘을 준 채 하루를 버틴 박씨는 이후 일주일가량 몸살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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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몸을 실은 박씨는 로프를 고리에 감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하강 방식을 보여줬다. 그는 “예전에는 이렇게 작업했다”며 “별도 장비가 있는 게 아니라 줄을 감으면 멈추고 풀면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옥상에 로프를 고정할 구조물이 마땅치 않은 현장에서는 물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통 여러 개를 묶어 무게를 만든 뒤 여기에 로프를 연결하기도 했다.
박씨는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방식이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번이 한 달이 됐고, 한 달이 1년이 됐다. 그렇게 로프 작업은 그의 직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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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컨테이너 위에서 30분간 로프 타는 법을 배운 뒤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던 박씨처럼 지금도 선배를 따라다니며 기술을 익히는 방식은 여전했다.
지난 14일 경기 용인의 한 산업로프 교육장에서 만난 하용수(31)씨는 전문건설업체에서 행정과 현장 업무를 병행하다 지난해 외벽 시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작업팀에 들어갔다. 당시 별도의 산업로프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현장부터 경험했다.
하씨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급한 곳은 초보자에게 두 시간 정도 짧게 설명한 뒤 빠르면 하루나 이틀 만에도 현장에 들어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화장실에 간다고 한 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하씨는 “높은 곳이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걸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간절함 때문에 탔다”고 말했다.
그는 달비계 작업을 약 6개월간 경험한 뒤 사비를 들여 다른 로프 작업 방식인 자일 방식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달비계 작업 역시 작업자마다 방식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알게 됐고 체계적인 작업 기준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루 일당 15만 원을 벌려고 제 목숨을 담보로 걸었던 셈이죠. 그때는 먹고살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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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외벽 작업이 몇 단계의 업체를 거쳐 현장에 내려오는 과정에서 실제 작업에 투입되는 금액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한된 공사비 안에서 수익을 내려다보니 작업 기간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려는 압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같은 압박은 안전 절차를 생략하는 원인으로도 이어진다. 박씨는 작업 위치를 옮길 때마다 작업용 로프뿐 아니라 별도로 설치한 안전 로프까지 다시 옮겨 설치해야 하는데 한 번에 10분 안팎이 더 걸리는 작업이 하루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면 전체 작업시간이 1시간 이상 늘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은 10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그런데 그걸 하루 종일 반복하면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면서 안전 로프를 생략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게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거죠”
박씨는 2017년 경남 양산에서 외벽 작업 중 주민이 작업줄을 끊어 노동자가 숨진 사건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작업용 줄 외에 설치해야 하는 예비 구명줄이 없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박씨는 “그 사건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사고 원인과는 별개로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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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2026년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고사망자는 25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8% 감소했다.
그럼에도 ‘떨어짐’ 사망자는 84명으로 전체 사고사망자의 33.2%를 차지해 사고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업종별로도 건설업 사망자가 105명으로 최다였다.
특히 정부도 달비계 작업을 사고가 반복되는 고위험 작업으로 지목하고 지역별 협회와 구인 사이트 등을 통해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박씨와 하씨는 제도 개선과 함께 작업자 스스로 안전수칙을 지키는 문화가 병행돼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안전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작업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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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치는 곳을 찾아 교육부터 받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씨 역시 언젠가 자신의 회사를 세워 젊은 작업자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선배의 말 한마디만 믿고 목숨을 맡기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며 “일을 하더라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박씨는 현장에 처음 나가는 후배들에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라며 늘 같은 말을 한다.
30년 동안 수십 미터 외벽에 매달렸던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제가 잘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재수가 좋았던 겁니다”
뉴스가 지나간 뒤에도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건과 사회 변화의 한가운데서 이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의 시선으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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