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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회사 내규를 살펴보니 백숙부(부친의 남자형제)상에 대한 휴가 및 경조사비 규정은 있지만, 부친의 여형제(고모)·모친의 형제(이모·외삼촌)에 대해서는 규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A씨는 “2025년에 이런 성차별이 버젓이 회사 내규에 적혀있다는 게 충격적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기업 대다수가 유사한 내규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대 민간 기업의 장례 휴가 규정을 살펴본 결과, 이 중 7개 기업은 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한 장례 휴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백숙부상에 대해서는 평균 2∼3일의 휴가를 지급했다. 10대 기업은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으로 집계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10대 기업 중 1개사는 백숙부·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해 모두 휴가를 지급하지 않았다. 2개사는 이들에 대해 모두 동일한(1∼2일) 휴가를 지급하고 있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도 백숙부·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해서는 모두 휴가가 지급되지 않는 식으로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이 사안도 ‘차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3년 인권위는 기업들이 친조부모상과 외조부모상에 대해 경조휴가 및 경조비 지급 차등을 두는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기업들은 인권위에 “외조부모상을 당한 직원은 외손이라 친손과 달리 직접 상주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차이를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가 입장을 표명한 지 약 12년이 지난 현재 외조부모·친조부모상에 대한 장례휴가 차별 관행은 일부 개선된 상태다. 현재 10대 기업은 모두 외조부모·친조부모상에 대해 동일한 휴가일수를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규모가 작은 기업은 여전히 외조부모·친조부모에 차별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인권위는 친조부모 사망에 대해서만 경조휴가·경조비를 지급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진정을 접수해 이듬해 차별 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백한 차별적 관행이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고려해 일정 일수의 가족상을 정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자신과 친밀한 가족의 죽음을 챙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