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전력공사(EDF)가 자국 시장으로 여겼던 유럽에서 이뤄진 신규 원전 입찰 경쟁에서 한수원에 실력으로 진 후 이를 무산시키려 맹공을 퍼부으며,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에도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EU, 프랑스 측 신고에 직권조사 ‘만지작’
17일 업계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체코가 한수원을 통해 진행하려던 체코 두코바니 원전 5·6호기 신규 건설 사업이 EU 역외보조금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검토 중이다.
EU는 EU 외 국가의 기업이 자국 보조금을 받아 EU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EU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역외보조금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즉 한수원이 체코 원전 입찰 때 한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지 않았는지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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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국가 차원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체코 원전 수주에 실패하자, 정치력을 활용해 체코와 한수원의 계약을 무산시키려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체코 등에 자료 제출을 요청한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의 국적이 프랑스라는 점 때문이다. 현지에서도 이 같은 의혹이 나왔고 그는 “역내시장 보호를 맡은 당국자로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체코와 한수원 측은 프랑스의 역외보조금 규정 위반이 없었다며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이 사업을 맡은 EDUⅡ(CEZ의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페테르 자보드스키는 이달 7일(현지시간) “많은 국내외 전문가가 참여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된 입찰”이라며 “이는 체코 경쟁보호청(UOHS)의 (EDF 제소 기각) 결론으로도 입증됐다”고 말했다.
EDF, 한-체코 계약 무산시키려 ‘지연 전략’
다만, 안 그래도 체코 법원의 계약중지 가처분 결정으로 본계약이 무산된 한-체코의 원전 계약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한-체코는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된 지난해 7월부터 본계약 협의에 착수해 올 3월 계약서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EDF가 탈락 직후 이번 입찰이 불공정했다며 UOHS에 제소하면서 지난달 결론이 나오기까지 계약 시점을 미뤄야 했다.
또 체코 측은 UOHS가 지난달 말 EDF의 제소를 기각한 직후인 5월7일 본계약 체결식을 진행하려 했으나, EDF가 UOHS의 결론까지 문제삼으며 체코 법원에 계약중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체코 법원이 계약 하루 전날 이를 받아들이며 본계약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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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만약 EU 경쟁당국까지 해당 건을 조사하고 나선다면, 한-체코의 사업 추진에는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 EU 경쟁당국의 직권조사는 예비 조사에만 최대 90일, 심층 조사에 들어간다면 최대 200일이 연장될 수 있다. 체코 법원의 가처분이 해제되더라도 계약이 9~10개월 더 미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EDF의 일련의 행보가 한-체코의 계약을 최대한 지연시켜 끝내 무산시키려는 시간 끌기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은 6월3일 대통령 선거로 정부가 교체되고 체코 역시 10월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다만 입찰 과정에서 까다로운 EU 규정을 철저히 검토한 만큼 EDF의 지연 전략에도 본계약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 계약 지연 상황을 오히려 한국 원자력 산업계의 신뢰를 쌓는 시간으로 만들어 추가적인 기회를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계약은 기본적으로 26조원 규모 신규 원전 2기(두코바니 5·6호기) 사업에 대한 것이지만, 체코 정부가 검토 중인 추가 원전 2기(테믈린 3·4호기)에 대한 우선협상권도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