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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500대 기업 중 최소 360곳, 연례보고서 DEI 삭제

방성훈 기자I 2025.03.16 17:08:07

FT, 트럼프 당선후 연례보고서 제출한 400곳 분석
90% 이상이 DEI 언급 삭제…대기업 200곳도 포함
트럼프 행정명령 영향…"美정부 거래 끊길까 우려"
대부분 ''조용히'' 없애…다른 표현으로 대신 ''꼼쑤''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주요 대기업들이 연례보고서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항목을 삭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반(反)DEI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회계연도가 종료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상위 400대 기업을 자체 분석한 결과, 90% 이상이 연례보고서에서 DEI 정책과 관련된 항목 또는 용어를 삭제했다. 최소 360곳 이상이란 얘기다. 이 가운데 200곳 이상은 대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인 2021~2024년 DEI 관련 조항을 일부 삭제한 곳이 20개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많은 회사들이 연례보고서에 직원을 인종별로 분류한 통계를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흑인 전문가 네트워크나 DEI 이니셔티브 등과 같은 내부 관련 그룹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일부 회사는 DEI 프로그램을 아예 폐지했다. DEI 대신 ‘소속감’, ‘모든 직원이 성공하는 문화’ 등으로 표현 방식을 교묘하게 바꾼 곳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DEI 관련 언급을 삭제하고 실적 기반 채용을 강조한 곳도 있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실력주의는 인재 개발의 핵심”이라고 연례보고서에 적었다. 특정 계층에 DEI 프로그램에 따른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스코의 경우 척 로빈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DEI 이니셔티브를 확고하게 옹호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연례보고서에선 관련 언급을 삭제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DEI 프로그램에 대해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차별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한 지 며칠 만에 연방정부 기관에서 DEI 프로그램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엔 연방정부와 계약한 기업에 DEI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토록 요구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와 거래하는 기업은 자칫 연례보고서에 DEI 프로그램 관련 내용을 기재했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기존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아마존, 메타, 월마트, 맥도날드, 아메리칸항공, 보잉, 타깃, 로우스 등 외에도 마스터카드, 세일즈포스, S&P글로벌, 팔란티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이 DEI 관련 항목을 삭제한 주요 기업으로 지목됐다. 세일즈포스는 “연례보고서에서는 삭제했지만 평등이라는 오랜 핵심 가치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기업들은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빠른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책 변경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기업보다 ‘조용히’ 관련 언급을 삭제한 곳이 훨씬 많았다”며 “상당수 회사에서 내부 DEI 관련 공개 논의가 중단됐으며, 경영진들 역시 DEI 프로그램을 유지할 것인지 변경 혹은 폐기할 것인지를 두고 내부 평가를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DEI 관련 일자리도 줄었다. FT가 채용 웹사이트 인디드의 데이터를 별도 분석한 결과, 미국 내 DEI 관련 구인 공고 비중은 2022년 중반 0.04%로 정점을 찍은 뒤 현재는 절반(0.02%)으로 감소한 상태다.

기업 평판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팅업체 그래비티 리서치의 루크 하티그 사장은 “DEI 이니셔티브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조사 위협은 임원들에게 심각한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밤새도록 가장 걱정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애플과 스타벅스, 코스트코 등은 주주총회 투표 결과에 따라 DEI 프로그램을 유지키로 하면서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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