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회장은 현재의 금리체계를 “시험에서 평균 이하 점수만 보고 학생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지금은 차주가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만 가격에 반영할 뿐, 얼마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는 거의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다운사이드만 보는 금융에서 벗어나 업사이드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며 “실패 위험과 미래가치를 함께 반영하는 금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금융 구조가 우리 경제의 성장 단계와도 맞물려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화와 추격 성장기에는 담보와 현금흐름 중심 금융이 효과적으로 작동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선도성장 시대인 만큼 금융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담보 중심의 금융 구조는 혁신기업일수록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공장이나 토지 등 유형자산을 가진 기업은 자금 조달이 쉽지만, 기술과 아이디어가 핵심 경쟁력인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은 미래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생산적 금융은 담보를 얼마나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금융”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은행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정부가 기술의 사업성과 혁신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해 시장의 신뢰를 형성하면, 민간 금융이 이를 바탕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은 모두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같은 철학을 공유한다”며 “선도성장 시대 금융의 역할은 실패를 줄이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공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자봉 은행법학회장과의 일문일답.
-왜 지금 금융을 ‘실패를 평가하는 금융’이라고 표현했나.
△경제학의 핵심은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현재 금리체계는 차주의 부도 가능성 같은 개별 위험만 가격에 반영한다. 하지만 금융에서는 개별 위험뿐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봐야 한다. 개별 위험은 분산투자로 줄일 수 있지만 시스템 위험은 그렇지 않다. 금리도 부도확률뿐 아니라 시스템과의 연관성까지 함께 반영해야 한다.
지금의 금리체계를 학교 시험에 비유하면 평균보다 얼마나 못했는지만 보고 학생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평균보다 얼마나 잘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아래로 얼마나 벗어났는지뿐 아니라 위로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공정한 평가다. 지금 금융은 계속 ‘안 좋은 쪽’만 평가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위험이 큰 사람에게 높은 금리를 매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개인의 부도확률만 보면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스템 전체로 보면 다르다. 저신용 개인이나 소상공인이 부도를 낸다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반면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문제가 생기면 금융시장과 국가경제에 훨씬 큰 충격을 준다. 그럼에도 현재 금리체계는 개별 차주의 신용위험만 반영할 뿐 시스템 위험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시스템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은 저신용자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금리 역진성’이 발생한다. 저신용자는 높은 금리로 은행 자본적립에도 더 많이 기여하지만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시스템 위험은 적게 만들면서도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앞으로는 부도위험뿐 아니라 미래가치와 시스템 위험까지 함께 반영하는 금리체계로 바뀔 필요가 있다.
-결국 금융이 양극화를 키우는 구조라는 의미인가.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은 더 많이 벌면서도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린다. 반대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은 상환 능력이 부족한데도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한다. 결국 돈을 빌릴수록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한 금리 문제가 아니라 금융이 소득 양극화를 확대하는 구조적 문제로 본다.
-정부가 추진하는 포용금융도 단순히 공급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인가.
△포용금융은 취약계층에게 대출을 더 많이 해주는 정책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금융을 통해 사람들의 가능성을 다시 살려주는 데 있다. 지금은 신용점수가 낮거나 담보가 부족하면 금융시장 밖으로 밀려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경제활동에 다시 참여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포용금융의 본질이다.
공급 확대는 양의 문제이고 금리체계는 가격의 문제다. 돈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도 저신용자가 실제 위험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높은 금리는 다시 부도를 유발하고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져 금리가 더 오르는 악순환을 만들 수도 있다. 포용금융의 핵심은 대출을 더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금리체계를 정상화해 사람들의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 있다.
-현실적으로 BIS 체계도 바뀔 수 있다고 보나.
△현재 구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BIS 자본규제 체계 자체가 차주의 부도위험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은행들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변화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도 BIS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국가별 특수성을 반영해 위험가중치를 달리 적용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시스템 위험을 금리와 자본규제에 반영하는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으로 전환하려면 은행과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은행이 건전성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하다. BIS 자본규제를 받고 건전성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담보와 신용위험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은행이 아니라 제도다.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려면 금융회사만 바뀌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제도부터 조금씩 바꿔야 한다. 정부도 모든 대출을 대신 심사하거나 위험을 떠안을 필요는 없다. 기술 검증 등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포용금융은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 금융이고, 생산적 금융은 기업과 기술의 가능성을 믿는 금융이다. 둘 다 미래가치를 보고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철학이다. 은행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일정 수준의 공공성을 요구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시장원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과 시장원리가 함께 작동하는 금융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