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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일자리 감소는 이 탓"…금융위기 예견한 학자, 쓴소리

정수영 기자I 2025.03.16 17:57:39

'2008년 금융위기' 경고한 '라구람 라잔' 교수
일본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서 우려의 목소리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보호무역주의는 매우 낡은 방법이며, 모든 연구를 통해 모두에게 해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제조업의 일자리 손실은 자동화(기계화)가 주요 원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로 제조업을 보호하겠다고 하지만, 미국에선 기계가 일을 할 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경제학자이자, 인도 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도널드 16일 일본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 계획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사진=이데일리 DB]
◇“1개 일자리 만드는데 100만달러 필요…효과 글쎄”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기업들이 해외에서 물품을 생산해 미국에 되팔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계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기업들이 미국에서 공장을 지어 생산을 해도 일자리가 크게 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 결과, 1개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50만~100만 달러가 들었다”며 “일자리가 약간 늘더라도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고 했다.

라잔 교수는 오히려 관세를 통한 자국 보호정책이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봤다. 그는 “인도에서 바로 그런 일(경쟁력 약화)이 일어났다”며 “관세를 부과할 때마다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센 관세 조치를 내놓으면서 경제는 악순화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세 부과는 특정 산업이 숨을 돌리고 따라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시행해야지, 영구적인 보조장치로 만들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관세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에 대해선 단기냐, 장기냐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라잔 교수는 “제품에 비용을 추가하는 관세는 이론상 인플레 요인이지만, 그 자체의 영향은 제한적인 만큼 개별 요인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경험상, 달러 강세가 가격 상승분의 상당 부분을 상쇄했다”면서 “관세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이 일회성이라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라 볼 수 없는 만큼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관세 인상의 장기화 여부다. 그는 “하지만 관세 인상이 반복돼 인플레이션 우려 전망이 커지거나,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으로의 생산시설 이전에 따른 비용 증가, 외국 제품과의 경쟁이 줄어든 기업의 임금 인상 등의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라잔 교수는 미국 연준과 트럼프 행정부가 서로 다른 금융정책을 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세정책만으로 경기를 자극하진 않지만, 반도체 수입이나 사회보장과 관련한 면세 등 다른 조치를 추가하면 경기를 자극하고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면서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서고 있는데, 행정부가 (물가를 올릴 수 있는) 정반대 정책을 취하는 것은 거시경제에선 금기시된다”고 했다.

“AI강국은 미국은 서비스 경쟁력 높아…제조업만 생각하면 안돼”

라잔 교수는 미국이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인공지능(AI) 등에서도 경쟁력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주기적으로 ‘다른 나라에 속아 경쟁력을 잃었다’고 국민들이 생각한다”면서 1980년대 일본이 세계 제조업을 지배하고, 미국은 매력적인 제품을 만드는 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아이폰과 테슬라를 개발했고, AI도 발전시켰다. 미국이 AI분야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한다면 충분한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 환상이 사라지면 그 후에 자신의 기술 혁신 능력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달러를 평가절하(약달러)하기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를 할 것이란 관측에 대해선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봤다. 라잔 교수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는 이미 달러약세가 시작된 상황이었고, 합의는 그것을 뒷받침했을 뿐”이라면서 “오늘날의 외환시장 규모가 그때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의) 효과는 없을 것이고, 설령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해도 단기적으로 소폭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라잔 교수가 현재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가상자산시장이다. 그는 “가상자산의 대표격인 비트코인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으로, 아직까지 심각한 시련에 직면한 적이 없다”면서 “가상자산은 ‘새로운 금’이라고 불리지만, 경제의 본격적인 하강국면이 오면 가치가 유지될 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라구람 라잔 교수 →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2013~16년 인도준비은행(중앙은행) 총재 역임. 2005년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퇴임을 기념한 전문가 모임에서 후일 미국 주택 버블의 붕괴를 경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저서에서 금융위기, 통화정책, 공동체의 역할 등 폭넓은 주제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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