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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한국의 상속세는 그런 장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상속세는 더 이상 소수의 자산가만 부담하는 세금이 아니게 됐다.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가정, 지방에서 수십 년 일군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중소·중견기업까지, 상속세의 영향권은 생각보다 넓어졌다.
서울에 집 한 채만 있어도…상속세 납부 6년새 2배이상 급증
실제 숫자도 이를 보여준다. 국가 데이터처 통계를 살펴보면 상속세 신고 인원은 2018년 8449명에서 2024년 2만167명으로 늘었고, 신고된 상속재산가액 역시 약 20조4000억원에서 46조 9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최근 들어 상속세는 일부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집 한 채를 가진 가계라면 한 번쯤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세목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이 변화를 더 빠르게 만들었다. KB부동산 통계 기준으로 2025년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원을 넘어섰고, 중위가격도 11억원을 돌파했다. 배우자공제나 일괄공제 등 실제 계산 구조는 각 가정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서울에 집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와는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속세가 일반 국민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더 무거운 대목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가업 승계가 막히는 문제는 단순히 한 집안의 세금 고민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술력과 시장지배력을 갖춘 강소기업이 대를 이어 이어지지 못하고 사모펀드나 대기업에 매각되면, 그 여파는 고용과 투자, 기술 축적의 단절 우려로 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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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주주 주식에 할증평가까지 얹히면 국내에선 상속세 부담을 흔히 60% 수준으로 거론된다. 국가마다 공제와 과세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의 명목세율이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상속세 부담에 세계 1위 기업도 경영권 매각
그래서 세무 현장에서는 가업을 승계받는 후손들이 “회사를 계속 키울 것인가”보다 “상속세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먼저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는 과거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운용역으로 일했는데, 이때도 많은 중견기업 경영진의 한숨소리를 적지 않게 들었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가업을 자녀에게 승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이러한 부담이 이름 없는 작은 회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니더스, 쓰리세븐, 락앤락, 농우바이오, 까사미아처럼 각 업종에서 세계 1위 또는 국내 1위를 차지했던 기업들까지 상속세 부담이 경영권 매각의 배경으로 거론돼 왔다.
세계 1위 콘돔, 손톱깎이 기업, 국내 1위 종자기업, 대표 생활용품·가구기업마저 대를 잇지 못하고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현실은, 상속세 논쟁을 단순히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물론 회사를 파는 선택 자체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더 큰 자본을 만나 성장할 수도 있고, 새로운 전략적 투자자를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 상속세는 단순한 부의 이전 과세가 아니라, 산업의 연속성과 일자리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된다.
한국 사회가 상속세를 체감하는 또 다른 장면은 초대형 상속 사례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부담한 상속세는 약 12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부터 연부연납 방식으로 나눠 납부해 왔고, 다음달인 2026년 4월 마지막 납부가 예정돼 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이 사례는 상속세가 ‘보유한 자산 규모’와 ‘실제로 당장 마련해야 하는 현금’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을 만들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법 개정으로 2021년 개정으로 상속세 연부연납 기간은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또 2023년 개정으로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의 공제한도가 600억원으로 상향되고, 사후관리기간도 5년으로 단축되었다. 제도를 조금씩 손본 셈이다.
하지만 세금 부담을 나눠 내게 하거나, 특정한 경우에만 적용 가능한 가업승계제도 범위를 조금 넓힌 정도에 불과할 뿐, 이러한 ‘가지치기’식의 세법 개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세금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어떤 단위에서 과세할 것인지 제도의 기본 설계부터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방향의 개편 논의가 한동안 힘을 얻었다. 기획재정부는 2025년 3월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금처럼 피상속인의 전체 유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하는 대신, 상속인이 실제 취득한 몫을 기준으로 과세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법 개정 논의는 2025년 11월 국회에서 결국 보류됐다.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이다.
25년간 제자리…세법 중 가장 낡은 법 상속세
분명히 변화는 필요하다. 1999년 최고세율 구간을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추고 최고세율은 45%에서 50%로 상향한 법 개정 이후 큰 틀에서 변화가 없는 게 상속세법이다. 무려 25년간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세법 중에서 가장 낡은 세법이 된 셈이다.
상속세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는 부의 재분배를 강조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업 승계와 경제 성장을 말할 것이다. 어느 한쪽의 구호만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의 상속세는 더 이상 재벌가만의 세금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의 집 한 채를 가진 가정에도, 수십 년 기술을 쌓아온 중소기업에도, 상속세는 이미 현실의 부담이 됐다.
이제 질문은 단순해야 한다. 변화한 자산가격과 기업 현실을 반영해 제도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낡은 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과세의 문턱은 이미 훨씬 많은 사람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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