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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걸어둔 돈 가져간 보이스피싱 수거책…대법 "사기 아냐"

성주원 기자I 2025.01.22 08:47:18

수거책, 손잡이에 걸린 4000만원 가져가 기소
"돈 건네줄 의사 없었다"…''처분행위'' 불인정
대법 "피해자가 언제든 확인 가능" 무죄 확정
A씨, 수거책 가담 다른 범행으로 징역형 집유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로 피해자의 현관문에 걸린 현금을 가져간 수거책에 대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대법원 1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2021년 11월 당시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피해자 B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경찰을 사칭하며 “B씨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유출됐는데 거래 은행 직원들이 의심스럽다”고 속였다. 이어 “지문 감식을 위해 은행에서 현금 4000만원을 찾아 집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두면 지문인식카메라로 조회하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B씨가 이에 속아 현금을 비닐봉지에 넣어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두자 A씨는 조직의 지시에 따라 이를 가져갔다.

1심 법원은 A씨의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A씨가 수거책으로 가담한 다른 범행에 대해서는 사기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아무런 대면이나 접촉 없이 현관문에 걸린 봉지를 가져갔을 뿐”이라며 “사기죄의 처분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직권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수긍하고 검사와 피고인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란 범인의 기망에 따라 피해자가 착오로 재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범인에게 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현금이 든 비닐봉지를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둔 상태에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행위만으로는 현금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가 피고인에게 이전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하거나 사기죄 성립 등에 관한 법리, 사기죄에서 처분행위와 처분의사, 절도죄에 대한 직권심판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사기죄와 절도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기죄는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필요한 반면, 절도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재물을 가져가는 것이므로 처분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현금을 완전히 건네준 것이 아니라 지문 감식을 위해 일시적으로 둔 것이므로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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