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셋로그’ 소개팅의 모습이다. 과거 소개팅의 경우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의 취향을 맞춰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젠 일상까지 본 후에야 첫 만남을 가지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실패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20대가 늘어나거나 대학가에서 동아리 활동이 축소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처럼 인간 관계에 두려움을 갖는 문화가 고착화한다면 고립 청년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돌다리도 두드려야…“연애도 결혼도, 실패는 싫다”
30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청년들의 최근 소개팅 문화에선 실패할 관계를 피하는 청년들의 심리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2030 사이에서 유행하는 셋로그 소개팅은 얼굴과 나이 등 기본 정보뿐만 아니라 언제 일어나 무엇을 먹고 저녁에는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등 일상 생활까지 파악한 후에야 소개팅 대상을 선택한다.
참가자들은 “생활방식이 다르면 이별할 가능성이 높다”며 “짧지만 3일간이라도 상대의 진짜 일상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셋로그 소개팅을 경험해 본 직장인 전모(29) 씨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그 사람의 가치관과 고민, 목표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소개팅 주선자가 학력이나 자산 수준 등 수십명의 정보를 보관하고 메신저로 서로 조건을 조율해 만남을 갖는 문화는 이미 오래됐다. 일반인들이 결혼정보회사(결정사)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같은 문화를 발전시킨 애플리케이션(앱)도 있다. 이 앱에 가입하면 연애·일·음식·여가·사고방식 등 다섯 영역 50개 문항에 답한 뒤 비슷한 답을 한 상대를 매일 2명씩 추천받는다. 이후 쌍방이 확정적으로 호감 표시를 해야만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다.
해당 앱 이용자 박모(30) 씨는 “전 애인과 종교, 음주 문제로 크게 싸우고 헤어진 뒤 양보 못 할 가치관은 미리 맞춰보고 싶었다”며 “종교나 음주형태가 다른 상대는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거절했다”고 말했다.
결혼시장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경우 20대 신규 회원은 전년 대비 2023년 97%, 2024년 100%, 2025년 115% 증가하며 매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가연 관계자는 “20대의 연애·결혼 트렌드가 단순 조건 검증을 넘어 시간과 감정을 아끼는 효율적인 만남으로 변하고 있다”며 “요즘 20대들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무작위 소개팅이나 지인 소개보다 자신의 성향을 기반으로 만나는 체계적인 서비스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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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시장 뿐만 아니라 대학가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적이는 동아리, 왁자지껄한 대규모 모꼬지는 이미 옛말이 되고 있다.
서울소재 A대학의 중앙동아리 회장 최모(24) 씨는 “동아리 회원이 120명에 이르지만 지난 5월 모꼬지 참여율은 극히 저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과거에는 1년에 한 번 정도니 모꼬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모르는 사람 투성이인 행사에 돈까지 내면서 왜 가야하냐는 부정적인 분위기”라고 덧붙엿다. 그러면서 “돈내고 모꼬지를 갈 바에는 혼자 놀겠다는 학생들이 확실히 많아졌다”며 “그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라 ‘참여 좀 하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화엔 청년들의 관계에 대한 실패 회피 정서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취업도, 이직도, 돈을 버는 것도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다. 청년 세대 자체로 이미 실패해 있는 상태”라며 “그러다보니 성공 확률이 높은 쪽을 신중하게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문화로 인해 실패에 대한 ‘굳은살’이 얇아지면서 한 번의 실패가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활동 위축으로도 이어져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지난 2월 한국경제인협회에선 청년 은둔화에 따른 추정 사회경제적 손실이 1인당 연 약 983만원으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단법인 ‘오늘은’이 지난달 발표한 ‘2026 청년세대 고립보고서’에 따르면 고립을 겪은 청년들이 꼽은 가장 큰 원인은 ‘실패 경험’(49.2%)이었다. 보고서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한 청년은 “실패 경험이 많은 사람이 고위험군이 되는 게 아니다”며 “실패를 겪고 나서 회복이 어려운 청년이 고립 고위험군이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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