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심해(深海). 산소통 하나 없이, 오직 자신의 호흡 하나에 생명을 맡긴 채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수압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전복과 소라를 따낸다. 물 위로 올라와 내뿜는 턱밑까지 차올랐던 가쁜 숨소리. 제주부터 동해안까지, 수백년간 이어져 온 대한민국 해녀들의 거친 삶의 방식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극한의 노동 속에서도 자연과 공존하며 공동체를 지켜온 ‘K-해녀’의 삶이 국제사회에서 조명받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성정희 구룡포 어촌계장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선정한 ‘농수산식품 시스템 및 농어촌 개발 분야 여성 인재 100인’에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선정은 기아 종식과 식량안보 증진을 위해 설립된 유엔 전문기구 FAO가 ‘2026년 세계 여성농어업인의 해’를 맞아 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해 온 전 세계 여성 리더들의 혁신적인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전 세계 농어업인, 지역사회 지도자, 과학자 등 약 600명의 추천 후보 중 엄격한 심사를 거쳐 100명이 추려졌다. 한국에서는 성 계장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성 계장은 40년 가까이 거친 바다를 일궈온 베테랑 해녀이자 어촌 공동체 리더다. 그는 구룡포 어촌계장과 경북해녀협회 회장으로서 동료 해녀들의 척박한 작업 환경 개선과 복지 증진을 위해 헌신해 왔다. 동시에 여성 어업인으로서 지역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K-해녀의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물질 역사는 고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강인한 여성 공동체인 해녀(잠녀)들의 활동은 고려와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구하다. 오로지 어릴 적부터 익힌 물질 기량에 의존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이 직업은 강인한 여성 공동체를 형성하며 가정과 지역 경제를 떠받쳐 온 주체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산소 장비 없이 1~2분간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고 물 위로 나와 가쁜 숨을 내쉬는 ‘숨비소리’는 해녀 문화의 상징이다. 이들은 기량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뉘어 서로 지식과 생존 기술을 전수하고, 공동체 규약을 엄격히 준수하며 바다 자원을 지켜왔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들의 철저한 공존의 철학이다. 채취 기간과 해산물 크기 등을 제한해 남획을 막는 한편, 고령의 해녀를 위한 전용 작업장을 운영하거나 수익금 일부를 마을 발전을 위해 내놓는 등 끈끈한 협동과 나눔을 실천해 왔다. 이러한 생태 친화적 방식과 독특한 공동체 문화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로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점차 잦아들 위기에 처해 있다. 성 계장의 이번 UN 명예의 전당 입성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바다를 지켜온 우리 해녀들에게 건네는 세계의 찬사임과 동시에, 점점 사라져 가는 K-해녀 문화를 지속 가능하게 보존해야 한다는 숙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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