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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각서가 임대차계약을 바꾼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월세 약 1,400만 원의 지급을 명했다. 항소심은 달리 보아 새 임대인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대법원은 2026년 6월 25일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항소심의 논리는 이러했다. 2013년 각서로 옛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차임 지급의무가 없는 계약으로 임대차가 변경됐으니,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새 임대인도 월세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2013년 각서는 서로 다른 계약에서 생긴 월세 채권과 기계 대금 채권을 “대등액의 범위에서 소멸시키기로 하는 약정에 불과”하고, 임대차계약 내용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나아가 설령 각서로 월세를 면제하는 것으로 계약이 바뀌었더라도, 그 변경은 공시되지 않으면 새 임대인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업자등록은 “거래 안전을 위하여 임대차의 존재와 내용을 제3자가 명백히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공시방법”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사업자등록을 할 때 임대차계약서 사본을 내야 하고, 보증금이나 차임, 기간이 바뀌면 정정신고서를 내야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세무서장에게 그 건물의 차임과 보증금 정보를 요청해 ‘상가건물 임대차 현황서’를 열람할 수 있다(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3항). 차임 면제처럼 임차인에게 유리한 변경도 정정신고를 거쳐 현황서에 기재되지 않는 한 “임차인은 그 변경으로써 상가건물을 양수한 새로운 임대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변경 사항이 공시됐는지 심리하지 않았고, 대법원은 이를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으로 지적했다.
이 판단은 2016년 판결(대법원 2013다215676)에 바탕을 둔다. 그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업자등록으로 공시된 보증금과 차임이 실제 계약과 다르면 공시된 내용을 기준으로 대항력을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그 기준을 한 단계 더 넓힌 것으로 보인다. 대항력 자체는 인정되더라도, 공시되지 않은 유리한 변경은 새 임대인에게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매에 입찰하는 사람이 현황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고된 차임과 보증금뿐이다. 대법원은 신고되지 않은 약정의 위험을 공시를 믿은 매수인이 아니라 정정신고를 하지 않은 임차인이 부담하게 한 셈이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서 월세를 깎거나 면제받기로 했다면, 그 합의를 각서로만 두지 말고 임대차계약서를 고쳐 세무서에 사업자등록 정정신고를 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상가를 매수하거나 경매에 입찰하려는 사람도 현황서에 신고된 차임과 보증금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등기사항증명서에는 임대차의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파기환송심은 차임 면제가 공시됐는지를 다시 심리하게 된다. 기계 대금은 이 판결과 별개로 임차인이 옛 임대인에게 청구할 문제로 남는다. 각서는 서명한 두 사람 사이의 약속에 그친다. 주인이 바뀔 수 있는 건물에서 임차인을 지키는 것은 각서가 아니라, 세무서에 신고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해 둔 기록이다. 법이 임차인을 보호하는 범위도 거기까지다. 옛 임대인과의 약속을 믿고 신고를 미루면, 그 약속을 모르는 새 임대인에게는 효력이 없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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