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소경제 선두주자, 초기 스타트업 발굴해 키우겠다"

김연지 기자I 2025.01.14 10:26:04

7300억 굴리는 유럽 친환경 투자 명가 AP벤처스
패니 피어 회장·찰리 클라크 투자파트너 인터뷰
"소규모 혁신기업이 떠받치는 수소경제…더 커질 것"
수소경제 선두주자 자리매김한 한국에도 큰 관심

[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2020년 어느 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박사 학위를 받은 한인 학생 네 명은 수백 곳의 글로벌 투자사에 이메일을 보낸다. 유학 시절 ‘네 명 중 누구 하나라도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창업에 도전하자’는 약속을 실천하기 위한 일종의 첫 발을 내디뎠던 것. 이들은 수소와 질소의 화합물인 암모니아를 활용해 탄소 배출 없는 ‘청정 에너지 시스템’을 개발하고 2050년까지 운송산업의 완전한 탈탄소화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수백 곳의 투자사 중 답장을 보낸 곳은 단 다섯 곳뿐이었다. 실질적으로 돕겠다는 뉘앙스보다는 피드백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 이들의 아이디어를 흥미롭게 본 한 벤처캐피탈(VC)은 이들을 직접 만난 후 아이디어를 상업화할 수 있도록 매주 심야 회의를 거친다. 수개월 후 사업모델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자 이 VC는 첫 투자를 집행한다. 그로부터 1년 후 암모니아 연료전지 시스템을 다양한 운송 수단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 이들은 아마존 기후공약기금으로부터 2000만 달러(약 292억원)를, 2022년과 2023년에는 SK이노베이션 주도의 시리즈B 라운드를 통해 각각 4600만 달러(약 673억원)와 1억 5000만달러(약 2194억원)를 유치했다.

약 7300억원의 운용자산(AUM)을 굴리는 AP벤처스가 발굴한 한인 스타트업 ‘아모지’의 이야기다. AP벤처스는 영국의 다국적 광산기업 ‘앵글로 아메리칸’에서 지난 2018년 분사한 VC로, 탈탄소화 관련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주요 LP로는 앵글로 아메리칸 외에도 일본 5대 종합상사인 미쓰비시와 스미토모,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을 두고 있다.

(왼쪽부터) 영국 AP벤처스의 찰리 클라크(Charlie Clark) 투자 매니저와 페니 프리어(Penny Freer) 회장.(사진=AP벤처스 제공)
◇ 소규모 혁신기업이 떠받치는 수소경제

이데일리는 AP벤처스를 이끌고 있는 페니 프리어 회장과 찰리 클라크 투자 매니저를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프리어 회장은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 25년 이상을 몸담았던 영국 금융 전문가다. 과거 글로벌 자산관리운용사 베어드에서 영국 주식 투자 운용 부문을 책임졌고, 프랑스 기반의 증권사 크레딧리오네스에선 중소형 주식 운용 부문을 이끌었다. 현재 그는 AP벤처스 외에도 영국 채용·인재관리 회사 엠프레사이라그룹과 스코틀랜드 기반의 광업 회사 와이어그룹의 비상임 이사로 활동 중이다.

프리어 회장과 클라크 투자 매니저에게 ‘수소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묻자 이들은 “탈탄소화 가속화로 지속 가능한 경제를 구축할 수 있고, 다양한 산업에서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창출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철강과 항공, 화학 등 다양한 산업에서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창출함은 물론, 더 나아가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특히 프리어 회장은 “(수소경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지만, 과거의 직무 경험을 살리기에 최적화된 분야였다”고 답했다. 프리어 회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소규모의 혁신 기업들과 함께 일을 해왔는데, 현재 수소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체가 바로 이들”이라며 “이러한 기업에 투자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생태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라크 투자 매니저도 “순수과학과 광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직무 경험이 풍부한 AP벤처스 식구들은 환경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탄소 배출량을 줄여 기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AP벤처스의 포트폴리오사는 수소 경제와 탈탄소화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 포트폴리오로는 △미국 탄소중립연료(e-fuel) 전문 기술 기업 ‘인피니움’ △물 전기분해를 통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고효율 전해조를 개발하는 노르웨이 기반의 ‘하이스타’ △독일 기반의 산업용 액체 유기 수소 운반체 기술 개발 기업 ‘하이드로제너스 LOHC’ △수소 압축 기술을 개발하는 ‘하이ET 하이드로젠’ 등이 있다. 이들 중 하이ET 하이드로젠은 지난 2021년 호주의 다국적 광업 및 에너지 기업 ‘포르테스크 메탈 그룹’에 인수됐다.

◇ “수소경제 선두주자 韓, 끈끈한 파트너로”

유럽과 미국 투자에 힘을 싣고 있는 AP벤처스는 한국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프리어 회장은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 및 탈탄소화에 힘을 싣는 대기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발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수소 인프라에도 대규모로 투자하고, 기술 발전과 정책 지원, 공공-민간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수소 경제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국가”라며 “수소 생산과 비용 효율적인 저장 및 유통 솔루션은 전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데, 이 부분과 관련해 AP벤처스와 한국 간 협력 기회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기술력이 있는 초기 스타트업을 AP벤처스가 발굴하고 성장시키면, 추후 민간 협력으로 글로벌화를 꿈꿔볼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프리어 회장은 특히 “AP벤처스의 LP 다수는 공동 투자를 선호한다”며 “AP벤처스가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를 집행한 후 시리즈B와 C 등 후속 단계에 함께 참여해 포트폴리오사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자주 포착된다. LP와 함께 포트폴리오사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를 갖춘 셈”이라고 설명했다.

프리어 회장과 클라크 파트너에게 비전을 물었다. 그들은 “지난 2020년만 해도 수소경제를 논할 때 대부분이 낙관론을 펼쳤다”며 “이제는 어느 정도 현실적인 시각으로 수소경제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수소와 관련된 공급망이나 가치 사슬에 일정 수준의 성숙도를 가져가는 것이 목표”라면서도 “이를 꾸려나가는 것은 AP벤처스가 단독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앞으로 생태계를 보다 발전시키고,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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