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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맞나 싶어요"…싸늘한 소비심리, 전통시장 `울상`[르포]

이영민 기자I 2025.01.19 18:06:43

■서울 영등포청과시장 가보니
4인 가족 기준 설 차례상 비용 6~7%↑
고물가·고환율·기후변화에 차례 포기
농식품부, 대체과일 공급·설 할인지원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이게 명절 맞나…안 팔려서 죽겠어.”

19일 이데일리가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청과시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과와 배, 감, 대추 등 설 차례용 과일을 트럭에서 내리는 상인들이 있었다. 간밤의 도매장사가 끝나고 소매장사가 시작되는 오전 8시가 됐음에도 좌우 일렬로 이어진 상점가에는 불이 드문드문 밝혀졌다. 영업장부를 정리하던 상인들은 조명이 꺼진 가게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죄다 문을 닫은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청과시장의 일부 상점에 불이 꺼져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명절 같지 않다”…껑충 뛴 장바구니 물가에 차례상 간소화

명절 대목이 다가왔음에도 상권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폭염과 폭우·폭설이 과일 가격과 채솟값을 끌어올렸고,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폭등한 환율이 수입가격을 상승시키며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정부는 설 성수품 수급을 안정을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과 상인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실제 시장을 찾아온 이들은 좌판에 진열된 물건을 보고 걸음을 멈추다가도 가격을 들은 뒤에는 눈길을 돌렸다. 이날 영등포중앙시장에서 만난 이연우(52)씨는 “우리는 대가족이라 설에 20인분을 준비해야 하는데 과일이 만원씩 하니까 부담된다”며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 같은 대체재를 사도 명절에 100만원은 나가니까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을 찾으려고 많이 알아본다”고 말했다. 김정백(65)씨도 “우리도 이번에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모든 게 다 올랐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높은 비용 때문에 차례를 포기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강서구에 사는 정태연(69)씨는 “자식들에게 돈 부담을 주기 싫어서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물가와 금리가 너무 높으니까 다들 돈을 쓰기 어렵다”며 “이런 것을 정치가 해결해줘야 하는데, 나라부터 안정돼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물가정보가 지난 10일 공개한 ‘2025년 설 제수용품 물가정보’에 따르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올해 설 차례상 예상 비용은 전통시장은 30만2500원, 대형마트는 40만 9510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각각 6.7%와 7.2%씩 증가한 가격이다. 차례상 비용은 채소(32%)와 과일(57.9%) 가격이 오르면서 크게 올랐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부사 사과(3개)는 1만 5000원에서 올해 1만 8000원으로 20%가 상승했고, 배(3개)는 1만 3500원에서 2만 7000원으로 두 배나 값이 뛰었다. 올해 무의 가격은 개당 4000원으로 1년 전(2000원)보다 2배 비싸졌다. 같은 기간 배추 값은 포기당 7000원으로 75% 올랐다. 축산물의 경우 소고기·돼지고기·달걀 가격은 차이가 없었지만, 제수용 닭고기(1.5㎏) 값은 12.5% 올랐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밥상 덮친 이상기후…설 시장 풍경마저 바꿔

상인들도 고물가에 따른 후폭풍을 체감하고 있다. 영등포청과시장에서 30년 넘게 과일을 팔아온 박병상(57)씨는 “코로나 때는 집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과일을 조금씩 샀는데 지금은 전기랑 가스 요금이 다 오르니까 장사가 안된다”며 “비닐하우스는 이런 부대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과일값도 30~40%는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사가 안되니까 여기도 1년에 점포가 10개씩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영등포중앙시장에서 수산물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6)씨도 “대목이면 대목다워야 하는데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며 “명태 같은 물고기는 거의 수입하는데 수입가격이 너무 오르니까 사람들이 안 산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손해가 크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씨와 같은 시장에서 장사해온 강준식(57)씨는 “사과는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데 여름에 열대야가 너무 심해서 지난해 낙과가 많았다”며 “착색 없이 빨간 사과가 전만큼 없으니까 2~3만원씩 받던 게 지금은 4~5만원에 판매된다”고 말했다.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무와 배추도 지난해 여름 작황이 부진해 생산량이 줄었다. 최근에는 한파 탓에 공급량이 또 줄어 값이 올랐다.

한 시민이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중앙시장 골목을 지나가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물가 부담이 커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4일 ‘설 성수품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사과와 배의 계약재배 및 지정출하물량 4만톤(t)을 집중공급하고, 배추와 무는 정부 가용물량을 하루 200t 이상씩 총 1만 550t을 방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배추의 할당관세 적용(27%→0%)을 조기에 추진하고, 현재 시행하고 있는 무 할당관세(30%→0%)도 추가로 연장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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