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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선택이 항상 맞을까…이 사회에 던진 묵직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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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재 기자I 2026.09.15 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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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리뷰
홍컴퍼니 '매드 해터'
노동현장 딜레마와 구조적 문제, 2인극으로 조명
'정상과 이상, 누가 기준을 정하는가' 질문 남아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 ‘매드 해터’는 ‘미친 모자장수’ 노아의 이야기다. 그런데 ‘미친’이라는 수식어는 왜 붙었을까. 노아가 사회가 정해둔 모자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모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세상은 기존 질서와 다른 선택을 한 이들에게 쉽게 ‘이상하다’는 꼬리표를 단다. 그런데 고수해온 질서가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을 바로잡는 행동이 과연 이상한 선택일까.

뮤지컬 '매드 해터'의 한 장면(사진=홍컴퍼니)
뮤지컬 '매드 해터'의 한 장면(사진=홍컴퍼니)
노아는 열네 살이다. 굴뚝 청소부로 일하던 그는 굴뚝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자랐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이후 헥터 모자 공장에 취직해 탑햇 제작을 꿈꾼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휴게시간 없이 이어지는 과도한 노동과 열악한 작업 환경, 노동에 상응하지 않는 보상체계다. 동료의 부상과 질병을 목격한 그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사측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노동자에게 일을 계속할지 선택하도록 한다. 생존과 인권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노동자의 딜레마는 개인의 선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딜레마는 2인극이라는 형식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조슬린 역의 배우는 노아의 친구인 조슬린부터 권위적인 헥터, 노아와 함께 모자를 만드는 동료들, 작품의 해설자까지 노아를 둘러싼 인물을 모두 연기한다. 가해자와 조력자가 한 배우의 몸에서 교차하는 모습은 인간을 선명한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 아닌, 딜레마의 순간 무엇을 선택하느냐이다. 노아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쪽을 택한다.

뮤지컬 '매드 해터'의 한 장면(사진=홍컴퍼니)
뮤지컬 '매드 해터'의 한 장면(사진=홍컴퍼니)
노아의 문제의식은 노동 현장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사회는 여전히 생산성과 효율을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노인과 장애인, 외국인과 다른 인종을 배제한다. 노아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모자를 만든다. 런던의 시민증처럼 기능하는 탑햇이 아닌, 각자의 사연과 개성을 담은 모자다. 이 순간 모자는 계급을 나누는 표식에서 각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의미가 바뀐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노아는 개인의 각성을 연대로 확장한다. 공권력에 의한 강제 추방의 위기에도 주저앉지 않고 함께 걷기를 선택하는 이유다.

작품은 노동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차별과 혁명적 연대까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펼친다. 자칫 비장해질 수 있는 서사는 음악을 타고 자연스럽게 안착한다. 빠른 박자 위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는 부품처럼 움직이는 노동 현장을, 80인조 오케스트라편곡의 풍성한 사운드는 거대한 사회와 군중을 형상화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피콜로다. 가장 작지만 높은 음을 가진 피콜로는 마치 노아를 상징하는 듯 하다. 공연은 여러 악기의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되는 피콜로의 소리로 마무리된다. 이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노아의 절망처럼 들리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망으로 남는다.

‘매드 해터’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도 사회는 효율과 생산성,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이상하다’는 이름을 붙인다. 그 말은 때로 누군가를 배제해도 된다는 신호로 작동한다. 그래서 ‘매드 해터’는 묻는다.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정상일까. 변화를 향한 외침은 왜 이상하다고 여겨지는가. 정상과 이상을 나누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공연이 끝나도 묵직한 질문은 계속된다.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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