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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의 '플렉스'…유물 하나씩 맞춘 '오동나무 상자'의 비밀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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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26.10.13 07: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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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상서, 컬렉션을 읽다'
간송, 유물 수집 뒤 오동나무 상자 짜
당대 최고 감식안 오세창 등 전문가에
전래내역·감상 등 기록한 '상서' 의뢰
보존 넘어 유물 서사까지 후대 전승한
상서 61점, 유물 45점 총 106점 선별
간송컬렉션 수장체계 첫 대규모 공개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60대의 추사 김정희가 쓴 ‘차호호공’(且呼好共, 다시 불러 더불어 즐기다)과 오세창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이 작품에 대해 쓴 상서(1939)가 나란히 걸렸다. 바깥(뚜껑·아래)에는 ‘완당선생작촉예대련신품’이란 타이틀과 함께 ‘호방하고 뛰어난 기상으로 단연 첫째 손가락에 꼽을 작품’이라고, 안쪽(위)에는 ‘이 글씨에 대한 나의 논평이 용렬하고 평범하더라도 보화각 주인께서 웃어넘겨 주시길 바란다’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60대의 추사 김정희가 쓴 ‘차호호공’(且呼好共, 다시 불러 더불어 즐기다)과 오세창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이 작품에 대해 쓴 상서(1939)가 나란히 걸렸다. 바깥(뚜껑·아래)에는 ‘완당선생작촉예대련신품’이란 타이틀과 함께 ‘호방하고 뛰어난 기상으로 단연 첫째 손가락에 꼽을 작품’이라고, 안쪽(위)에는 ‘이 글씨에 대한 나의 논평이 용렬하고 평범하더라도 보화각 주인께서 웃어넘겨 주시길 바란다’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전씨의 보주 속에는 완당 선생의 대련이 매우 많이 소장되어 있다. 만약 그 우열을 가려 등급을 매긴다면 이 대련은 어느 자리에 놓아야 하겠는가? (…) 이것은 호방하고 뛰어난 기상으로 단연 첫째 손가락에 꼽을 작품이다. 기묘년 겨울, 오세창이 쓰다’(바깥 상서). ‘(…) 이 글씨에 대한 나의 논평이 용렬하고 평범하더라도 보화각 주인께서 웃어넘겨 주시길 바란다. 위창 노부가 다시 쓰다’(안쪽 상서).

이 글은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쓴 ‘완당선생작촉예대련신품’(脘堂先生蜀作隷對聯神品·1939)의 일부다. 좀 쉽게 풀자면 ‘완당 선생이 쓴 촉예 서체 대련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뜻이고.

자, 일단 여기까지 정리가 됐다면 이제부터는 이 글을 둘러싼 엄청난 ‘정보’를 캐낼 차례다. 슬쩍 봐도 비평인 이 글이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완당이 쓴 ‘차호호공’(且呼好共, 다시 불러 더불어 즐기다. 2018년 보물 지정). 완당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또 다른 호다. ‘추사체’ 등으로 더 많이 알려진 추사보다 김정희가 더 자주 사용하고 아꼈다는 호. 그러니까 60대 후반의 김정희가 ‘중국 촉도의 암벽에 새겨진 한나라대의 예서’(촉예)로 쓴 대련 ‘차호호공’에 대한 오세창의 평인 셈이다.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2층에 꾸린 ‘조선서화’ 방이다. 안쪽으로 이징(1581∼1653 이후)이 검은 비단에 금니로 그린 ‘고사한거’(고사의 한가로운 삶, 오른쩍)와 김시(1524∼1593)의 ‘선록완월’(신선과 사슴이 달을 구경하다)이 걸렸다. 상서는 둘 다 오세창이 썼다. ‘고사한거’에는 ‘이 허주의 니금산수도. 위창이 제하다’라고, ‘선록완월’에는 ‘김 양송당의 고사완월도. 위창이 상자에 서명하다’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2층에 꾸린 ‘조선서화’ 방이다. 안쪽으로 이징(1581∼1653 이후)이 검은 비단에 금니로 그린 ‘고사한거’(고사의 한가로운 삶, 오른쩍)와 김시(1524∼1593)의 ‘선록완월’(신선과 사슴이 달을 구경하다)이 걸렸다. 상서는 둘 다 오세창이 썼다. ‘고사한거’에는 ‘이 허주의 니금산수도. 위창이 제하다’라고, ‘선록완월’에는 ‘김 양송당의 고사완월도. 위창이 상자에 서명하다’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왠지 경직된 비평에 그치지 않은 듯하다. 당장 누군가에게 읽힐 것처럼 쓰였단 얘기다. 맞다. 그 ‘누군가’ 역시 이 글에 나와 있다. 적힌 그대로 옮기자면 ‘보화각 주인’인 ‘전씨’. 우리가 알고 있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다. 간송이 1930년대부터 김정희와 추사학파의 서화를 집중적으로 수집해왔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고, 그중 이 글씨를 오세창은 최고로 꼽았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글이 어디에 적혀 있었느냐는 건데. ‘오동나무 상자’다. ‘차호호공’이 돌돌 말린 채 들어 있던 그 오동나무 상자의 바깥(뚜껑 위)과 안쪽에 적힌 ‘상서’(箱書)다.

오원 장승업의 ‘신선도’ 두 폭 중 ‘추정귀선’(가을 뜨락의 거북과 신선). 다른 한 폭인 ‘송하녹선’(소나무 아래 사슴과 신선)을 함께 보관한 오동나무 상자가 옆에 놓였다. 상서는 오세창이 ‘장 오원의 신선도 쌍폭. 위창이 제하다’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원 장승업의 ‘신선도’ 두 폭 중 ‘추정귀선’(가을 뜨락의 거북과 신선). 다른 한 폭인 ‘송하녹선’(소나무 아래 사슴과 신선)을 함께 보관한 오동나무 상자가 옆에 놓였다. 상서는 오세창이 ‘장 오원의 신선도 쌍폭. 위창이 제하다’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모두는 간송의 ‘기획’이다. 1930년대부터 문화유산을 수집했던 간송이 오동나무 상자를 짜 그 유물 하나하나를 보관한 것은 물론, 감식을 하고 가치·의의를 전할 ‘상서’를 당대 최고 권위자들에게 의뢰했다는 거다. 상자 속 유물의 서사가 후대에 온전히 전해지도록 기록을 남겼다는 소리다.

오동나무 상자 하나, 쌀 한 가마니∼열 가마니 값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올가을 기획전으로 ‘상서, 컬렉션을 읽다’를 열었다. 전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소장품인 유물·미술품을 내보이던 그간의 ‘작품 전시’에서 더 나아간다. 유물과 오동나무 상자, 그 위에 적힌 상서까지 패키지로 꺼내놔서다. 유물 21건 45점(조선서화 12건, 근대서화 9건)과 상서 30건 61점 등 모두 51건 106점이 나섰는데, 간송컬렉션의 ‘수장체계’까지 대규모로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2층에 꾸린 ‘조선서화’ 방이다. 왼편으로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와 이 작품을 담은 오동나무 상자가, 그 옆으로는 수월당 임희지(1765∼?)의 ‘풍죽’과 이 작품을 담은 오동나무 상자가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2층에 꾸린 ‘조선서화’ 방이다. 왼편으로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와 이 작품을 담은 오동나무 상자가, 그 옆으로는 수월당 임희지(1765∼?)의 ‘풍죽’과 이 작품을 담은 오동나무 상자가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컬렉션의 상서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1934년이란다. 성북동에 ‘북단장’(문화재 수집 거점으로 매입한 부지. 이후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이 들어섬)을 조성하고 본가(종로)에 있던 소장품을 이전하면서부터다. 다만 상서 이전에 한 일이 있다. 그 소장품을 보관할 상자를 제작한 거다. 경성에서 내로라할 장인들을 수소문해 각 유물의 크기를 정확히 맞췄다는데. 방충·방부는 물론 습기조절과 단열에 강했던 오동나무가 최적이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상자 하나당 20∼200원씩 들었다니까. 당시 쌀 한 가마니가 20원 안팎이었다니 어떤 상자는 쌀 열 가마니의 값을 치렀다는 얘기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오동나무 상자가 700여 건쯤 되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플렉스’였다. 신념과 철학으로, 아니 사명감으로 소비하는 ‘가치 플렉스’.

오원 장승업의 ‘풍진삼협’(어지러운 세상의 세 협객)과 오동나무 상자. 상자 바깥의 상서는 오세창이 썼다. ‘오원의 삼협도. 심전의 옛 발문이 있다. 위창’. 흥미로운 건 상자 안쪽에 있을 심전 안중식의 ‘발문’이다. 내용을 추리면, 심전이 신묘년(1891) 봄 마침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원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풍진삼협도’라 하더란 거다. 그림에는 둘뿐인지라 ‘한 명은 어디에 있느냐’ 물었더니 ‘뒤에 있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원 장승업의 ‘풍진삼협’(어지러운 세상의 세 협객)과 오동나무 상자. 상자 바깥의 상서는 오세창이 썼다. ‘오원의 삼협도. 심전의 옛 발문이 있다. 위창’. 흥미로운 건 상자 안쪽에 있을 심전 안중식의 ‘발문’이다. 내용을 추리면, 심전이 신묘년(1891) 봄 마침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원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풍진삼협도’라 하더란 거다. 그림에는 둘뿐인지라 ‘한 명은 어디에 있느냐’ 물었더니 ‘뒤에 있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상서는 오동나무 상자가 준비된 이후 감식을 거친 뒤 기록했다. 700여 건의 상자 중 상서를 확인한 게 258건. 미술관은 그 상서에 남은 필적에서 4인을 찾아냈다. 당대 최고의 감식가이자 간송의 스승으로 조선·중국·일본 서화 전반을 담당한 오세창을 필두로 조선 서화를 담당한 이도영(1884∼1933), 추사학파와 근대 서화를 맡은 이한복(1897∼1944), 중국·일본 서화에 정통한 일본 한학자 나가오 우잔(1864∼1942)까지. 간송의 부탁을 받은 이들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먹글씨로 그 속에 담긴 유물·미술품의 이력을 적어둔 거다. 작가와 작품명은 기본이고 재료, 전래내역, 입수경위, 감상평까지. 때론 엄숙하고 때론 익살스럽게.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곁에 오세창이 상서(1934)를 쓴 오동나무 상자가 걸렸다. 바깥에는 ‘김 단원의 동방만천투도도’라고, 안쪽에는 ‘단원 인물의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가품’이라고 평가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곁에 오세창이 상서(1934)를 쓴 오동나무 상자가 걸렸다. 바깥에는 ‘김 단원의 동방만천투도도’라고, 안쪽에는 ‘단원 인물의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가품’이라고 평가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번 기획전 역시 이들 4인이 쓴 상서가 주도하고 가름한다.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의 인물화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에 오세창은 ‘단원 인물의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가품’(1934)이라고 단언했다. 또 김정희의 30대 작품인 ‘직성수구’(곧은 소리와 빼어난 구절)에서는 작품만으론 절대 알 수 없는, 여러 손을 탄 긴 여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완당이 고순에게 증정한 이 행서 오언 대련은 어떤 이가 연경 시장에서 구득했는데 전씨의 보화각 소장품이 됐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1939)이라고 썼던 거다. 실제로 이 작품은 고순에게 넘겨진 뒤 중국 한 수장가에게 들어갔다가 육당 최남선의 매부 박석윤이 우연히 발견해 구입했고 다시 전형필의 수장품이 됐던 터.

추사 김정희가 30대에 쓴 ‘직성수구’(곧은 소리와 빼어난 구절)와 오세창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이 작품에 대해 쓴 상서(1939)가 나란히 걸렸다. 바깥(뚜껑·아래)에는 ‘완당 선생이 행서로 쓴 오언 대련’이란 타이틀과 함께 ‘고순에게 증정한 이 행서 오언 대련은 어떤 이가 연경 시장에서 구득했는데 전씨의 보화각 소장품이 됐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추사 김정희가 30대에 쓴 ‘직성수구’(곧은 소리와 빼어난 구절)와 오세창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이 작품에 대해 쓴 상서(1939)가 나란히 걸렸다. 바깥(뚜껑·아래)에는 ‘완당 선생이 행서로 쓴 오언 대련’이란 타이틀과 함께 ‘고순에게 증정한 이 행서 오언 대련은 어떤 이가 연경 시장에서 구득했는데 전씨의 보화각 소장품이 됐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원 장승업(1843∼1897)의 ‘풍진삼협’(어지러운 세상의 세 협객), 심전 안중식(1861∼1919)의 ‘한산충무’(한산도의 충무공, 1918),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 등도 상서와 함께 나섰다. 이 중 12폭 족자로 오동나무 상자에 담겼던 ‘인물고실지도’가 본래 병풍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스토리가 재미있다. 간송이 첫돌에 찍은 사진의 뒷배경에 놓였던 그 병풍이었다는 거다.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와 12폭 족자를 담은 오동나무 상자. 상서는 오세창이 썼다. 상자 바깥(뚜껑·아래)에는 ‘조 소림 선생의 인물고실지도 열두 족자’라고, 안쪽(위)에는 그 열두 폭의 화제와 왕조·인물의 정보를 두 단으로 나눠 적었다. 전시에는 그중 8폭만 골라 내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와 12폭 족자를 담은 오동나무 상자. 상서는 오세창이 썼다. 상자 바깥(뚜껑·아래)에는 ‘조 소림 선생의 인물고실지도 열두 족자’라고, 안쪽(위)에는 그 열두 폭의 화제와 왕조·인물의 정보를 두 단으로 나눠 적었다. 전시에는 그중 8폭만 골라 내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 전형필의 첫돌 사진(1907). 12폭 족자로 전해지는 ‘인물고실지도’가 본래 병풍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결정적인 증거다. 사진의 뒷배경에 놓인 병풍 속 그림이 ‘인물고실지도’의 일부다(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 전형필의 첫돌 사진(1907). 12폭 족자로 전해지는 ‘인물고실지도’가 본래 병풍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결정적인 증거다. 사진의 뒷배경에 놓인 병풍 속 그림이 ‘인물고실지도’의 일부다(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입수·감식·보존까지 다 갖춰야 비로소 컬렉션

결국 이번 기획전의 핵심은 이거다. 수집한 유물의 엄정한 감식부터 수장의 최종 단계라 할 ‘공인’까지 기어이 얹어 간송컬렉션을 완성했다는 것. 비싸게 샀으니 얌전히 모셔두는 게 컬렉션의 전부가 아님을 내비친 거다. 간송의 차남인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전시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젊은 날의 나는 상자 속 유물의 온기를 더듬었다면 이제의 나는 상자 뚜껑 위에 남은 글씨를 천천히 읽는다. (…) 상서는 단지 상자에 적힌 글이 아니라 아버님이 먼 훗날의 우리에게 남긴 조용한 편지이자 문화에 대한 믿음의 증언이다.”

심전 안중식의 ‘한산충무’(한산도의 충무공, 1918)와 이한복이 상서를 쓴 오동나무 상자. ‘심전 선생의 충무공상. 무호 이한복이 삼가 제하다’라고 써 있다. 1915년 잡지 ‘청춘’(4회)에 유사한 무인의 도상을 삽화로 선보인 적이 있는 안중식이 그 모습에 화려한 채색을 더해 충무공 초상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심전 안중식의 ‘한산충무’(한산도의 충무공, 1918)와 이한복이 상서를 쓴 오동나무 상자. ‘심전 선생의 충무공상. 무호 이한복이 삼가 제하다’라고 써 있다. 1915년 잡지 ‘청춘’(4회)에 유사한 무인의 도상을 삽화로 선보인 적이 있는 안중식이 그 모습에 화려한 채색을 더해 충무공 초상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2024년부터 3년에 걸쳐 꾸린 6개의 기획전이 이번 전시로 마침표를 찍는다. 미술관을 정비하고 재개관한 뒤 꼬박 6번의 봄·가을을 보냈다. ‘보화각 1938’(2024 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2024 가을), ‘선우풍월: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2025 봄), ‘보화비장: 간송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2025 가을), ‘문화보국: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2026 봄)을 거쳐 이번 ‘상서’ 전까지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오동나무 상자 자체에 남은 역사까지 알려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상서’는 3년 6회 전시의 마지막 장식에 어울리는 주제”라고 했다.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1층에 꾸린 ‘근대서화’ 방이다. 한 관람객이 안쪽에 전시한 소림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를 둘러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1층에 꾸린 ‘근대서화’ 방이다. 한 관람객이 안쪽에 전시한 소림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를 둘러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흔히들 목을 매는 관람객 수를 앞세워 성과를 자랑할 만도 한데 미술관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3년 프로젝트의 마감만 알렸다. 비단 그 속에서 봤던 유물들이 아니어도 말이다. 한 점 허투루 꺼내놓지 않은, 미술관 식구들의 참 고됐을 작업까지도 애써 에두른 간송의 마음으로 읽힌다. 외부 충격에 자신은 쪼개지더라도 작품만은 보호해야 하는 ‘오동나무 상자’, 바로 그거였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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