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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격에 우크라이나 책 800만권 소실…'문화전쟁'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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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10.05 14: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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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고 피격…재고 85% 잿더미
올여름 1300만권…인쇄분 3분의 1 파괴
"점령지선 우크라이나어 책부터 없애"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대형 출판사 창고에 쌓여 있던 책 800만권이 잿더미가 됐다. 올여름에만 우크라이나에서 책 1300만권이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사라지면서, 2022년 개전 이후 일었던 우크라이나어 출판 붐이 위기를 맞고 있다. 무력 충돌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언어와 정체성을 겨냥한 ‘문화전쟁’도 벌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2024년 5월 러시아의 포격으로 파괴된 하르키우 출판사에서 불타 전량 소실된 '모탄카'(우크라이나 전통 천 인형)의 남은 한 권. (사진=AFP)
2024년 5월 러시아의 포격으로 파괴된 하르키우 출판사에서 불타 전량 소실된 '모탄카'(우크라이나 전통 천 인형)의 남은 한 권. (사진=AFP)
4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8월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 있는 출판사 라노크의 물류창고가 러시아의 제트엔진 샤헤드 드론 공격을 받았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책 800만권이 모두 불탔다. 새 학기를 앞두고 들여놓은 교과서 62만8000권도 포함됐다. 라노크 전체 재고의 85%가 넘는 규모다. 당시 근무 중이던 직원 50명은 모두 무사했지만, 불길을 잡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올여름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책이 1300만권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올해 우크라이나에서 인쇄된 책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빅토르 크루글로프 라노크 최고경영자(CEO)는 “군사시설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누구나 책 창고라는 걸 안다”며 의도적인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보흐다나 라이우크 우크라이나 문화부 차관은 이번 공격이 물류창고 전반을 노리는 러시아의 최근 공세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그는 “러시아는 키이우를 점령할 수 없으니 키이우 주변 창고를 공격해 우리의 일상을 빼앗으려 한다”며 “책도 일상의 일부”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도서관에서 우크라이나어 책을 꺼내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책은 이번 전쟁에서 정체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2022년까지 우크라이나 도서 시장의 약 70%는 러시아어 책이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어 출판 금지와 러시아어를 앞세운 소련의 정책이 낳은 결과다. 1991년 독립 뒤에도 우크라이나어 소설의 흥행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작가 옥사나 자부시코가 1996년 소설을 우크라이나어로 고집해 펴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현대 우크라이나 문학의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산 수입이 끊기고 많은 국민이 일상 언어를 우크라이나어로 바꾸면서 우크라이나어 출판이 크게 늘었다.

최근 러시아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이 같은 출판 붐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8월 28일엔 키이우 외곽의 우편업체 노바포슈타 물류창고가 공격받았다. 소형 출판사 크라프키는 이 공격으로 보유한 책을 모두 잃었다.

우크라이나어판 해리 포터 시리즈를 펴내는 원로 출판인 이반 말코비치도 같은 공격으로 책 4만권, 약 50만달러(약 6억7350만원)어치를 잃었다. 또 다른 소형 출판사 ‘후 이즈 댓’은 재고를 모두 잃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운영을 중단했다.

대형 출판사들이 교과서와 베스트셀러 재인쇄를 서두르면서 신인 작가나 실험적인 작품은 뒤로 밀리고 있다.

출판사들은 재고를 전국의 작은 창고로 분산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라이우크 차관은 이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소형 출판사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세계 출판사들에 우크라이나 책 번역 출간을 호소할 계획이다. 그는 “불탄 책 사진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크루글로프 CEO도 “모든 것을 다시 세울 것”이라며 “더 잘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11월 4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포사드-포크로우스케 마을의 파손된 문화회관 안에 책들이 쌓여 있다. 이 마을은 2022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사진=AFP)
2023년 11월 4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포사드-포크로우스케 마을의 파손된 문화회관 안에 책들이 쌓여 있다. 이 마을은 2022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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