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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은 서울과 강릉을 오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러나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안흥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지만 안흥 찐빵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안흥에서 평창 방림으로 가는 길에 문재라는 고개가 있다. 옛부터 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사자산 끝자락에서부터 시작되는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지나가야 했다. 이 도로가 옛 42번 국도이자 관동대로로 불리웠던 길이다.
관동대로는 조선시대 한양과 강원 영동을 잇는 유일한 길로 율곡과 신사임당, 허균과 허난설헌, 김시습, 정철, 이색 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수백년간 이어졌던 이 길은 1995년 문재터널이 뚫리면서 잊혀진 옛길로 남았다. 이후 길은 사라졌지만 숲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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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 상안리 낙엽송숲은 국내 최대 규모이자 강원권에서 가장 오래된 낙엽송 군락이다. 낙엽송을 비롯해 소나무, 자작나무 등이 식재돼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 목재 생산을 위해 38㏊ 규모의 낙엽송을 식재한 이후 1983년 잣나무 10㏊ 등을 추가 조림했다. 여기에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소나무 9㏊와 참나무 3㏊가 천연림으로 자생하면서 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숲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이다. 산림청은 당시 국토녹화 성공사례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숲 교육장소로 상안리 낙엽송숲을 선정했다.
인공림과 천연림 등 53㏊ 규모의 숲은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옛 42번 국도는 임도로 활용되고 있고, 이 길을 따라 자작나무,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 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아직도 임도 곳곳에는 과거 화전민이 거주했던 터가 남아 있다. 임도이자 숲길은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80~90년령의 낙엽송 높이는 18~26m, 흉고 직경(가슴 높이 지름)이 30~40㎝에 달할 정도다.
능선에는 자연적으로 자란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천연림이다 보니 인공림과 같은 수려함은 없지만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당당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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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안리 낙엽송숲은 다른 숲과 달리 하층 식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홍천국유림관리소는 현상 유지를 견지하면서도 목재 생산을 위한 숲 가꾸기는 거의 실시하지 않는다. 이 일대 거주하는 주민들의 숲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윤재희(78) 상안2리 노인회장은 “숲에 있는 잣나무는 마을의 유일한 산림소득 자원”이라며 “잣을 수확해 연간 1000여만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민들이 볼 때는 많은 수익은 아니겠지만 숲을 봐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그 이상”이라며 “주민들에게 쉼과 삶, 자연과의 조화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이 숲”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옥(73) 숲해설사도 “1930년대 대규모의 낙엽송 식재 이후 1960~1970년대 국토녹화 시기에는 산에 거주하는 많은 화전민들을 이주시키고, 잣나무를 대거 심었다”며 “숲길은 A·B·C·D 등 모두 4개 탐방로로 구성돼 걷기 좋은 숲길로 유명해지면서 탐방객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계절마다 만개하는 다양한 꽃부터 옛 42번 국도, 화전민, 국토녹화사업 등 수백년간 이어진 길과 숲에 대한 스토리를 들려줄 때 호응이 좋아 흥이 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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