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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대하는 태도… "다시" 외치는 그들[문화대상 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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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백 기자I 2026.07.07 06:00:00

-심사위원 리뷰
주은길 작·연출 ‘양떼목장의 대혈투’
울타리 밖 꿈꾸는 존재들의 비극적 우화

[이시원 극작가] 어떤 연극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연극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드물게 어떤 연극은 가슴속에 오래 묻혀 있던 감각 하나를 깨운다. 주은길 작·연출의 ‘양떼목장의 대혈투’(5월 22일~6월 7일, 국립정동극장 세실)는 그런 작품이다. 국립정동극장 ‘2026 창작ing’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이 연극은 얼룩말 ‘세로’의 탈출 사건을 모티프로 삼지만, 사실 세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다. 진짜 주인공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다.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이 현실의 사건을 단순한 사회 비판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로의 탈출은 뉴스 속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인의 실존을 비추는 거대한 은유로 확장된다. 목장을 탈출한 양,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그리고 방 안에 갇힌 채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청년들.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운명으로 연결된다. 작품은 동물과 인간을 오가며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끝내 제시하지 않는다.

희곡의 구조 역시 흥미롭다. 죽은 양의 기억이 다른 양에게 꿈처럼 전승되고, 그 꿈이 다시 다음 존재에게 이어지는 방식은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킨다.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이야기, 실패로 끝나지만 다시 시작되는 서사. 이 반복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작품의 철학 그 자체다. 삶은 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 같지만, 그 반복 속에서 누군가는 이전과 다른 질문을 품게 된다. 극은 바로 그 미세한 변화의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작품이 실패를 바라보는 태도다. 오늘날 수많은 이야기들이 성공과 극복을 말한다. 하지만 ‘양떼목장의 대혈투’ 속 존재들은 대부분 실패한다. 세로는 붙잡히고, 양은 죽고, 인간은 삶의 여러 선택지 앞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탈출을 꿈꾸고, 다시 달리고, 다시 실패하고, 또다시 시작한다.

희곡이 품고 있는 상징과 사유의 깊이를 무대 위에서 온전히 구현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연출 역시 여러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풍성하게 제시되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완전히 응집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지점이 싫지 않았던 것은, 오랜만에 공연장에서 만나는 어떤 생경한 감각 때문이었다. 잘 정리된 완성도 대신 거친 실험성이 있었고, 세련된 기술 대신 창작자의 고민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무르익은 작품이 주는 안정감과는 다른 종류의 매력이었다. 어쩌면 젊은 창작자만이 가질 수 있는 떫고도 신선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의 마지막에 얼룩말 세로가 외치는 “다시”라는 말은 대사라기보다 하나의 다짐처럼 들린다. 그것은 희망의 언어라기보다 의지의 언어에 가깝다.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낙관도, 탈출 끝에 낙원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도 아닌,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뛰겠다는 ‘결심’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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