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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천국'된 병원…수급도 환경도 위태[안치영의 메디컬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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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영 기자I 2026.04.29 06:05:03

개원 심사 대비해 소독 장비 형식적으로 비치
감염 우려 커지면서 일회용 의료기기 사용 구조 정착
원료 불안정·환경 고려한 재처리 방안 대두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 기준에는 ‘소독기 보유’를 포함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소독기를 사용하지 않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감염 예방을 위해 일회용 의료기기 사용을 보편화하면서 소독 자체가 필요 없는 구조로 바뀌어서다.

서울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요즘 의원은 대부분 일회용품을 사용해 의료기기를 소독할 일이 거의 없다”며 “감염관리 점검을 나와도 ‘여긴 할 게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의원은 개원 과정에서 소독기가 없다고 명확히 밝혔지만 담당 보건소 관계자는 “있는 것으로 처리해주겠다”고 안내했다. 규정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형식적으로 적용되는 셈이다.

이 같은 관행은 일부 의료기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부 의원의 경우 개원 심사 당일만 소독기를 빌려 비치했다가 이후 반납하거나 처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십만원이나 하는 소독기를 보건소 현장 실사에 맞춰 잠깐 빌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실과 규정의 괴리는 감염관리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과거에는 의료기기를 세척·멸균해 반복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이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특히 주사기, 수액세트, 카테터 등 체내에 직접 사용하는 기구는 감염 우려로 대부분 일회용으로 전환됐다.

재사용을 유지하려면 고도의 멸균 설비 뿐만 아니라 인력과 관리체계도 필요하다. 이는 곧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의료계 한 인사는 “재사용 기구를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설비와 인건비가 더 든다”며 “결국 비용과 안전을 고려하면 일회용품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일회용품 대부분이 플라스틱 기반이라는 점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모품은 의원도 수십 종류, 종합병원은 수천 종류에 이른다. 주사기를 비롯해 △수액백 △포장재 △장갑 △카테터 등 거의 모든 품목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플라스틱 의존 구조는 최근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동전쟁 이후 석유화학 원료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의료제품 수급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플라스틱의 주요 원료인 나프타 공급이 흔들릴 경우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소모품 생산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의료는 결국 소모품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며 “플라스틱 공급이 흔들리면 진료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도 일회용 의료용품 사용에 변수다. 일회용품 사용 증가는 곧바로 폐기물 증가로 이어지며 소각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과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약 20만t 초중반 수준으로 코로나19 이후 일시 감소했다가 다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고령화와 병상 수 증가로 구조적 증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처리’(reprocessing) 방식을 대안으로 논의하고 있다. 사용한 의료용품을 수거해 세척·멸균·성능 검증을 거쳐 재사용하는 방식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재처리 산업이 자리 잡으며 비용 절감과 환경 보호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술용 가운 등 일부 품목은 세척 후 재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다만 재처리 과정이 부실할 경우 감염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철저한 관리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결국 의료현장은 감염 안전을 위해 일회용품 중심 구조를 선택했지만, 그 결과 환경 부담과 공급망 리스크라는 새로운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감염 예방을 넘어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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