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극단 그린피그 '진노'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목격한 극작가 장 주네의 책 기반 비극 마주한 인간 내면과 외면했던 우리의 죄책감 성찰
[조형준 공연기획자] 한 판 굿이다. 더 넓게 표현하자면 한 편의 제의다. 제의는 어쩔 수 없는 단단한 운명 앞에서 우리 스스로의 태도를 신의 의지에 연결하여 선언하듯 펼치는 집단적 행위다. 그래서 이 행위는 기본적으로 단단한 세상사에 반(反)한다. 극단 그린피그는 이미 2024년 ‘불온한 상상력 (재)선언’에서 “상상력은 그 자체로 불온한 것이다. 즉 지금의 세계를 거부하고 각자의 새로운 세계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상력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진노’라는 공연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연극 '진노'의 한 장면.(사진=극단 그린피그)
1982년 9월 16일부터 18일 사이, 이스라엘군의 비호 아래 레바논의 팔랑헤 민병대가 난민 캠프 샤틸라의 팔레스타인인 3000여 명을 학살한다. 연극 ‘진노’(7월 25일~8월 2일, 예술공간 혜화)는 학살 후 현장을 돌아본 시인이자 극작가 장 주네의 책 ‘샤틸라에서의 4시간’을 베이스로 한다.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낭독하고, 낭독한 배우들이 무대로 내려와 학살당한 사람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마주하며 그들의 몸부림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낭독과 행위가 병치되고, 그 사이로 지금 여기의 목소리들이 스며드는 구성이다.
주네의 텍스트를 재현이 아닌 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사람의 언어 그대로 ‘낭독’으로 옮기는 것, 학살의 현장을 배우가 구체적 인과(因果)로 연기하지 않는 것. 이는 참상을 직접 재현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선택인 동시에, 제의의 형식을 빌려 참상을 대하는 태도를 내세우는 일이다. 접신한 무당이 서로 다른 세계와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듯 낭독자는 잠시 주네가 되고, 관객은 잠시 1982년 샤틸라의 목격자가 된다. 관객은 무표정하게 반복되는 배우들의 행위, 넘어짐과 일어남, 쓰러짐과 스러짐에 의미를 생성한다.
연극 '진노'의 한 장면.(사진=극단 그린피그)
연극 '진노'의 한 장면.(사진=극단 그린피그)
이는 재현이라기보다 ‘신탁’이나 ‘공수’와도 같은 제의적 행위다. 낭독과 행위는 학살의 사건 자체보다 이를 마주한 인간의 내면적 태도를 향한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 여기’의 목소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공연은 책 도입부인 “사진은 2차원이고 텔레비전 화면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곳으로도 직접 들어갈 수 없다”는 텍스트를 따라간다. 파편화된 사람 형상과 일상의 조각, 반복되는 행위와 건조한 낭독 사이로 지금 여기의 외침과 주장, 증언들이 솟구쳤다 내려앉는다. 무대에 널린 생명과 일상의 파편은 언어를 앞지르는 오브제가 된다. 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학살의 참상뿐 아니라, 그 앞에서 눈을 가리고 애써 고개를 돌린 외면의 정황까지 감각하게 한다. 무대와 객석은 정의를 쟁취하려는 연대의 공간이라기보다, 외면이라는 미필적 고의를 씻어내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의의 공간이 된다.
관객을 향해 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 스스로 그 형식과 행위에 공명하도록 정교하게 연출한 무대다. 특히 이 모든 제의적 구성을 감싸며 나지막한 합송처럼 퍼지는 그레고리안 성가 ‘디에스 이레’가 인상적이다. ‘진노의 날’을 뜻하는 이 성가는 단조 느낌으로 하강하는 4음이 반복되며 강렬하고 불길한 기운을 만든다. 심판의 날에 대한 공포에 앞서 자비를 구하는 탄원은 이 공연에서 죽은 자들뿐 아니라 그들에게 공명하는 산 자들까지 감싸 안으며 제의적 의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