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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교가는 미국의 대선 전부터 ‘트럼프 2.0’에 대해 고민해 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선 전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대화를 언급하며 북한에 러브콜을 보낸 데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협상에 대해서도 수차례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인수팀이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이 중대한 시기에 계엄과 탄핵에 부딪히며 우리 외교는 ‘올스톱’ 상태를 맞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여당의 질서 있는 퇴진 요구와 야당의 더 커진 탄핵 공세에 국정에서 역할을 하기 힘든 처지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는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 국민과 국제사회에서 우려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나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대외일정을 최소화하고 있고, 차관들도 정해진 출장을 보류하거나 조기 귀국하고 있다.
이제까지 미국에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 통상 수개월 내에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2001년에는 3월(김대중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에는 4월(이명박 전 대통령),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 5월(문재인 전 대통령)에 각각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미 정상회담 계획은 커녕 잡혀 있던 고위급 대화도 연기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일본만 방문하고 한국은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스틴 장관은 당초 일본과 한국을 잇달아 방문해 미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려 했지만 계엄 사태 이후 일정을 변경했다. 이미 앞서 4∼5일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도 계엄 사태 여파 속에서 무기한 연기됐다.
외교부는 각급에서 긴밀한 소통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한미 동맹을 흔들림없이 이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도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를 접견해 비상계엄 발표 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계엄 여파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확대하며 외교 공백 역시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올 수밖에 없다. 외교부 1차관을 지냈던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 정상화되기 전까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시팅덕(Sitting-duck·앉아 있는 오리, 이용 당하기 쉬운 대상)이 될 것”이라며 “국제 관행상 타국은 우리나라와 아주 일상적이고 행정적인 소통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성과로 내세웠던 한미동맹은 현재 크게 손상을 입은 상태로 이제 대외 신인도마저 하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라며 “계엄에 따른 피해와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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