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대한 문화예술계 반응은 한마디로 “새로운 비전이 안 보인다”로 정리된다. 인수위 구성부터 문화예술계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아 문화예술 홀대 우려가 제기됐는데, 결과적으로 문화예술계 현장의 요구가 국정과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데다 추상적인 정책으로만 채워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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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은 △예술인 정의 및 활동증명 제도 개선 △문화예술 창작·향유 공간 조성 △청년예술가 생애 처음·경력단절 이음 지원 확대 △전문·신진 예술인 대상 창작준비금 지원 확대 △예술기업의 창업단계별·글로벌 도약 지원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자 확대 및 산재보험 적용 확대 △예술인 공공임대주택 제공 △장애예술인 전용 공연장·전시장 조성 등이다.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분야 국정과제에 대해 “기존 정부에서 해온 문화예술 정책 지원을 답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술인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확대 등은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 현장에 적용되고 있고, 청년예술가 지원과 창작준비금 등도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이미 실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산재보험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선 ‘전면 적용’을 검토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보험 적용 ‘확대’로 명시해 오히려 정책적으로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수위와 면담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노동자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국정과제에선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예술인 권리보장법’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블랙리스트, 미투 운동 등으로 제기된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창작의 자유와 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으로 지난해 8월 제정돼 윤석열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정윤희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위원장은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지원’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는데 내용을 보면 ‘예술인 권리보장법’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며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도 ‘능력주의’를 내세웠던 지금까지의 문화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경쟁을 통한 공정’으로 읽힌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면 표현의 자유, 노동자성 인정, 예술인 권리보장법 실현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데 이러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인수위는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을 통한 기대효과로 △국내 예술시장의 성장 등 예술생태계의 자생력 확보 △안정적인 예술 창작여건 조성과 장애예술인의 제약없는 예술활동기회 보장 등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예술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허울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 위원장은 “미술시장을 예로 들면 수십년 활동한 미술작가는 그림 하나 팔기 어려운 반면, 한덕수 총리후보자의 아내가 그린 그림은 왕성하게 거래되는 것처럼 투명하지 않은 ‘블랙마켓’의 성향이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 방안이 없다면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예술생태계 자생력 확보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엔 정부 출범 이후 문화예술계 현장 요구를 반영해 문화예술 정책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기존 문화정책을 개선하더라도 이에 대한 내용이나 방향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문화예술 분야의 상생 협의체 등을 구성해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