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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유보소득세는 중소기업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악법·세금폭탄법입니다. 즉시 폐기해야 합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기재부가 추진 중인 유보소득세 관련해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유보소득세는 1인·가족기업 등 중소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유보금을 쌓아두면 과세를 하는 방안이다. 내년부터 시행된다.
홍 부총리는 연휴에도 중소기업을 찾아 각별히 챙길 정도로 중소기업 사랑이 남달랐다. 그러나 최근 중소기업 업계는 ‘배은망덕’(?)하게도 홍 부총리를 ‘공공의 적’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유보소득세 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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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유보금 4배 증가할 때 中企 8배 급증
유보소득세 부과는 기재부의 오랜 숙원이다. 기업에 쌓인 유보금을 투자로 유도하고,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법인세율(10~25%)은 개인사업자의 소득세율(6~42%)보다 낮다. 이 때문에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개 법인을 만들고 유보금을 쌓아놓는 문제를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실제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가족이 소유한 부동산 임대업체 정강을 통해 마세라티 등 고급 승용차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300억원대 부동산 투기를 한 업자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가 강화되자 가족법인을 설립해 법망을 피하려다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기재부는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7년부터 실무 검토를 해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관련 연구용역을 맡았다. 연구 결과 중소기업의 유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조세연의 2017년 ‘소규모 법인 과세체계 개선방안’ 최종보고서(김학수·우진희)에 따르면 2000~2016년 28만개 기업의 재무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기업의 현금성자산 규모는 2000년 127조원에서 2016년 579조원으로 4.5배 증가했다.
주목되는 점은 중소기업의 유보금이 대기업보다 더 빠르게 불어났다는 점이다. 대기업 보유 현금성 자산은 같은 기간에 113조원에서 467조원으로 4.1배 늘었다. 중소기업 보유 현금성 자산은 14조원에서 11조원으로 7.8배 증가했다. 2000~2016년 연평균 현금성자산 증가율은 대기업은 5.9%, 중소기업은 7.9%였다.
이 결과 2000년에는 매출액 대비 현금성자산 비율이 대기업은 16.0%, 중소기업은 14.2%였다. 중소기업의 유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2016년 매출액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은 대기업이 19.7%, 중소기업이 21.4%로 역전됐다.
중소기업의 조세회피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조세연의 2016년 ‘세목별 Tax Gap 추정과 조세관련 지하경제 규모 추정’(안종석), 2017년 ‘소규모 법인의 효율적인 세원관리 방안 연구’(이상엽·김빛마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세금을 적게 신고한 과소신고율이 중소기업(수입금액 100억원 이하)은 24.6%, 중·대규모 법인(100억원 초과)은 10.8%였다.
조세연은 “소규모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 및 사후검증 비율은 매우 낮으며 (중소기업 세무조사 유예로) 최근 더욱 하락하는 추세다. 소규모 법인은 과세당국 세원관리의 사각지대”라며 “세무조사 등을 위한 행정력을 근시일 내에 확충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세원관리 수단이 절실하다.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전환할 유인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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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증세 부담에 조세회피 낙인까지…업계 반발
이에 기재부는 지난 7월 3년간 준비해온 유보소득세를 전격 발표했다. 가족회사(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가 8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법인)가 초과 유보소득을 쌓아둘 경우 배당으로 간주해 배당소득세를 물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당정협의, 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로 이같은 내년도 세법개정안을 보냈다.
하지만 정책 타이밍(시점) 등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19 여파로 중소기업들이 골병이 들었는데 유보소득세로 허리까지 휘게 생겼다는 반발이 거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12~16일 비상장 중소기업 309개를 대상으로 유보소득세에 대한 의견조사를 한 결과, 도입 반대 의견이 90.2%에 달했다.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놓인 중소기업의 등을 떠미는 악법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부담 수준을 놓고도 정부와 업계의 간극은 컸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지난달 29일 시행령을 공개하면서 예외조항을 뒀다고 강조했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의 입장을 달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초과 유보소득을 갖고 있으면 조세회피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부담감, 향후 언젠가 증세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부담감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보소득세 법안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셈이다.
유보소득세 법안 통과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야당은 강력 반발하고 있고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여야에서 “초과 유보소득 과세 유예 및 환급 조항 등을 신설해야 한다”(이광재),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추경호), “세원 확보 노력도 정도껏 해달라”(윤희숙)는 비판이 잇따랐다.
홍 부총리는 3일·6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4~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참석한다. 홍 부총리가 원칙·명분에만 집착할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융통성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요즘 중소기업들을 만나면 정말 어려워서 사업하기 힘들다고 한다”며 “정부가 슬기롭게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소신고율=세금을 원칙대로 제대로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원칙대로 낼 때 부담하는 세 부담 추정치에서 실제 신고한 세액을 제외해 과소신고갭(Gap)을 구한다. 이어 과소신고갭을 세 부담 추정치로 나누면 된다. 과소신고율이 높을수록 조세탈루가 심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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