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도 두 차례 개정을 거쳤다. 첫 번째 개정은 ‘정보공유분석기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사기 관련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2026년 8월 시행 예정)했고 두 번째 개정은 가상자산사업자를 지급정지·환급 체계에 포함시켜 가상자산 거래까지 피해 구제 대상으로 편입(2026년 10월 시행 예정)했다.
현행 규제는 거래소의 시스템과 내부통제를 조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는 이용자가 사기에 속아 스스로 자산을 전송하는 데서 발생한다. 규제가 막고 있는 곳과 피해가 터지는 곳이 다르다. 성벽은 높아졌지만 공격은 성문 안의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사기는 기술적 탈취가 아니라 ‘기망에 의한 자발적 전송’이 주를 이룬다. △인플루언서 사칭 투자 유도 △텔레그램 허위 정보 확산 △피싱 링크와 원격제어 앱을 결합한 OTP 탈취 등이 대표적이다. FBI의 2025년 ‘Internet Crime Report’도 가상자산 피해 대부분이 투자 사기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투자 사기는 외견상 정상 거래로 보이기에 시스템 필터링만으로는 잡아내기 어렵다. 기존 금융권의 피해 구제 체계는 자금이 계좌에 머물러 있다는 전제 위에 설계돼 있다. 가상자산은 다르다. 외부 지갑으로 출금돼 다중 주소로 분산(Mixing)되는 순간 회수가 불가능하다. 더구나 이용자가 정상 인증을 거쳐 스스로 전송한 자산을 거래소가 임의로 차단하기도 어렵다. AML(자금세탁방지)·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나 이용자 보호법상 ‘상시감시 체계’ 역시 의심거래나 시세조종에 맞춰져 있어, ‘외견상 정상 범주’로 보이는 기망 거래를 가려내기 어렵다. 사후 대응 역시 속도의 벽에 부딪힌다. 거래가 완료되면 사실상 회수 불능 상황이 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각지대가 있다. 텔레그램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등 ‘유입 플랫폼’이다. 제도권 금융상품 광고와 같은 엄격한 심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가상자산 관련 콘텐츠는 표현의 자유와 기술적 분석의 난해함 때문에 식별과 통제도 어렵다. 사기의 근원지인 SNS 등에 책임 구조를 확장하지 않는 한 거래소 단계의 차단은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결국 ‘법·기술·이용자 판단’ 이 세 요소 사이의 간극을 메울 해법은 책임의 재분배와 공조에 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넛지(Nudge,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기반의 정교한 통제다. 고위험 거래에 일률적 제한을 거는 것이 아니라 추가 인증·출금 지연·경고 팝업 등 이용자가 한 박자 멈추고 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장치를 거래 흐름 안에 설계해야 한다. 사기범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차단이 아니라 피해자의 ‘잠깐의 멈춤’이다.
둘째, 유입 플랫폼의 책임 공조 체계 구축이다. 현재 사기성 콘텐츠는 플랫폼에서 생성·유통되고 피해는 거래소에서 발생하며 책임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구조다. 플랫폼의 필터링 의무를 명확히 하고 허위·과장 광고를 실시간 차단할 수 있는 규제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금융상품 광고에 적용되는 심의 수준을 가상자산 관련 콘텐츠에도 적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셋째, 실시간 공조 기반의 ‘골든 타임 대응망’ 구축이다. 법률의 개정으로 정보공유분석기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이를 실제 운영 체계로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수사기관과 사업자 간 실시간 핫라인을 통해 자금이 외부 지갑으로 분산되기 전 ‘선 동결-후 조치’가 가능하도록 실무 절차를 표준화해야 한다. 특히 USDT나 USDC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은 동결·소각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자산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되는 단계에서 신속한 공조가 이뤄진다면 피해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신뢰는 리스크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책임의 사슬’이 얼마나 촘촘하게 마련되는가에 달려있다. 기술적 방어선을 넘어 거래 주체 간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의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기동 대표변호사=25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 원전비리수사 단장, 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중요 수사 부서 책임자를 도맡았다. 기업·금융 분야 로펌 로백스(LawVax)를 설립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융 전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