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가수 이선희가 토크프로그램(SBS 힐링캠프)에 나와 아버지를 언급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선희는 아버지가 대처승이라고 밝혔다. 이선희는 “대처승인 아버지와 숲 속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 엄청나게 말썽꾸러기였다”며 “학교는 도시인 논현동에서 다녔지만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외부와 차단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불교 용어 풀이집인 ‘시공 불교사전’에 따르면 대처승이란 ‘아내를 두고 있는 승려’라고 나와 있다.
대처승은 한국에 없는 전통이지만 일제 강점기 들어서 대처승이 흔한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크게 늘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처승이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므로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대처승의 기원은 꼭 일본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이판·사판 제도와 연관이 있다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선 후기에 수행에만 몰두하는 승려인 이판승에 대응해 사판승이 등장했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많은 승려들이 관가와 유생들의 요구로 신발, 종이 등을 만들거나 잡역에 종사해야 했다. 이를 견뎌내지 못하는 사찰은 폐사 위기에 처했다.
사찰을 유지하려면 사찰의 운영과 사무에만 전념하는 사판승이 필요해졌다. 반면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들은 산으로 들어가 참선이나 강경에만 몰두했는데 이들을 이판승이라고 불렀다.
사판승들은 사찰운영에 매달려 불교 본연의 수행을 소홀히 하는 등 폐단이 적지 않았으나 당시의 많은 잡역과 사회적 천대를 감당하면서도 사찰운영에 애쓴 공으로 오늘날의 사찰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판승과 사판승의 구분은 광복 이후 비구승(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독신으로 불도를 닦는 승려)과 대처승의 분쟁으로 재현됐다. 비구승을 이판승, 대처승을 사판승이라고 했다. 이는 비구승이 계율과 수행을 중시했던 것에 반해 대처승들은 처자를 거느리고 사찰의 사무와 운영에 많이 관여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한편 북한에는 가정이 있고 삭발하지 않으며 절에도 상주하지 않는 승려가 있어 대한민국의 대처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대처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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