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준컴퍼니의 김혜준 대표는 지난 20일 열린 ‘2025 남도미식문화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서 K-푸드의 세계화를 단순한 유행이 아닌, ‘문화적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이 직접 브랜딩을 맡은 뉴욕의 레스토랑 ‘주옥’의 글로벌 진출 사례를 예로 들며 한식의 본질과 지역 정체성, 그리고 해외 무대에서의 실질적 전략을 풀어냈다.
김 대표는 뉴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선 한식의 정체성이 모호하게 전달될 경우 소비자와의 접점이 약해진다”고 지적했다. “K타운 한복판의 140년 된 건물에 굳이 들어간 이유도, 기존 한식의 정서를 보존한 채, 낯설지만 본질적인 방식으로 공간과 음식을 풀어내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고급화된 모던 한식이 뉴욕에서 주목받는 가운데 그녀는 오히려 아날로그적 요소와 전통 식문화의 서사를 중심으로 브랜딩을 시도했다.
|
‘주옥 뉴욕’은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다. 김 대표는 공간 구성부터 철학을 담았다. 리셉션에 한국 대청마루를 구현하고, 허상원 작가의 ‘호랑이’ 작품으로 손님을 맞는다. 아트월에는 제주 바다의 흐름과 바람을 오칠로 그려냈다. “음식뿐 아니라 그릇, 색감, 공간, 향까지 모두가 한식의 ‘맥락’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해인요 백자에 포도 문양을 요청해 시그니처 식기에 담았고, 주방에서 사용하는 들기름조차 국내 장인 브랜드와 함께 만들어 안정적으로 수급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구현 뒤에는 수많은 ‘장벽’이 존재했다”고 고백한다. 대표적인 것이 식재료 수급과 인력난이다. “현지에서 한국 식재료를 찾는 것은 어렵고,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땅에서 자란 재료는 맛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뉴저지의 한인 농장들과 연합해 공동 농장을 조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직접 키운 달래와 배추 등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글로벌 한식 레스토랑이 마주한 실질적 과제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젊고 감각적인 셰프들이 많지만, 그들이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반은 아직도 열악하다. 유통, 인력, 식자재, 제조 인허가까지 모두 고비용과 복잡한 절차로 막혀 있다”고 짚는다. 이는 단순히 민간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그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장류와 발효식품의 수출 확대를 위해 식품법과 위생기준 등 절차 간소화, 공급망 지원, 인력교류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 지역성과 관광을 잇는 ‘한식’
김 대표는 최근 일본에서 체험한 ‘오베르주(Ovberge)’ 사례를 통해, 한식 세계화의 새로운 힌트를 제시했다. “지방의 산속에 위치해도, 정체성이 확실한 레스토랑은 세계 어디에서든 ‘목적지(Destination)’가 된다”며, “숙소와 요리, 지역의 식문화를 통합한 경험 기반의 한식 모델은 K-미식관광의 차세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고급 한식의 범주를 넘어, 지역 관광과 농촌 재생, 청년 일자리 창출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레스토랑 하나가 지역을 바꾸고, 셰프 한 명이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이제는 지자체와 관광공사, 정부가 식문화 기반의 통합적 콘텐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김 대표는 “남도의 맛은 이미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 미식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 매력을 세계 시장에 어떤 언어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감각과 전략이 더 중요하다”며, “이제는 한식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지역성과 공예, 감각과 교육이 연결된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