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 요리인류 대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은 지난 20일 서울 종각에서 열린 ‘2025 지속가능한 미식문화포럼’ 기조강연에 나서 한식의 세계화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짚었다. <요리인류>, <푸드 크로니클>, <사찰음식 프로젝트> 등 여러 작업을 통해 음식과 문명의 관계를 탐구해온 그는, K-푸드의 세계적 성공이 자칫 단기적인 유행에 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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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 성공 너머, 구조적 위기 직시해야
이욱정 감독은 “K-푸드는 현재 소비재로서는 명백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베를린, 파리, 뉴욕 등지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현장을 언급했다. 독일의 인기 한식당 ‘김치공주’의 사례처럼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김치찌개와 전을 즐기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한식의 주류를 구성하는 음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K-푸드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전통 한식보다는 인스턴트 라면, 떡볶이, 냉동 만두, 치킨 등 가공식품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팔리는 음식은 많지만, 감동을 주는 음식은 적다”는 이중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감독이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었다. 그는 이를 세 가지 차원에서 해석했다. 먼저,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성’이다. 한국 음식은 본래 채소 중심, 발효 중심의 생태적 식문화이며, 이는 기후 위기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예로 그는 사찰음식을 들었다. 절제와 생명존중, 순환의 미학을 담고 있는 사찰음식은 현재 세계 요리사들 사이에서 생태미식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만큼 채소를 다양하게 다루며, 철학적 사고가 배어 있는 식문화는 드물다”며 이 감독은 강조했다.
두 번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지속 가능성’이다. 그는 동네 백반집, 골목 한정식당 같은 소규모 자영업 식당들이 한식의 실질적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폐업이 가속화되면서 음식 생태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화려한 한식 마케팅의 이면에서 실제 음식을 만들어내는 전선은 무너지고 있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이야기와 철학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이다. 한식은 단순한 레시피의 집합이 아니라, ‘왜 이 음식을 먹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철학적 세계관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수출하는 것은 음식이지만, 궁극적으로 수출해야 할 것은 세계관”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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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또 하나의 위기로 ‘인재의 실종’을 꼽았다. 음식 콘텐츠를 기획하고, 요리를 구현하며, 음식 문화를 기록하고 해석할 젊은 인재들이 점점 한식 생태계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한식에 진입할 길이 없다”며 “외식업은 여전히 저임금 고위험 산업이고, 음식 콘텐츠 산업도 극히 제한적이다”며 그 어떤 산업이든, 인재가 들어오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이 ‘마케팅’이 아니라, 국가적 철학 설계와 산업 생태계 재편이라는 구조적 과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음식, 관광, 교육, 농업, 미디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며, 한식이 단지 수출 품목이 아니라 문화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강연의 말미에서 이 감독은 “남도야말로 한식 철학의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라며, 남도의 음식문화가 세계 한식 담론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남도는 풍요로운 맛뿐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절제, 생명존중이라는 철학이 배어 있는 공간”이라며 “남도에서 한식의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K-푸드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맛은 짧지만, 철학은 오래간다. 우리는 이제 음식으로 문명을 말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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