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부는 즉각 수습에 나섰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며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 역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대해 확고하고 일치된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미국 새 정부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여섯 차례 핵 실험을 했고 핵탄두도 최소 수십기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 보유 세력’이라고 언급하며 현행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nuclear-weapon state)와 별개이지만, 핵 능력 자체는 있는 국가로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보 유세력으로 언급한 것은 NPT 체제를 깨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핵 능력을 인정할 테니 협상에 나서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까지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협상을 했지만, 핵 능력을 인정하고 핵 감축이나 동결을 목표로 하는 ‘스몰 딜’을 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 동맹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집권 1기와 달리,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취임사 역시 한미관계에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북 정책의 판을 바꾸려는 지금 우리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하며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을 시킬 수 있을지다. 대행체제의 한국 외교에 미국이 귀를 기울여줄지 장담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중국도 한정 국가부주석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했다. 일본은 다음달 이사바 시게루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 안에 중국에 직접 방문해 시 주석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트럼프의 취임식에 외교장관이나 권한대행이 별도의 초대를 받지 못했고 정상회담 계획도 없다.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최대한 ‘한국 패싱’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핵 군축을 전제로 한 북미 협상 로드맵이 펼쳐질 것”이라며 “한국이 북미 정상의 해빙 기류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현재 우리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의견 조율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인 만큼, 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외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원팀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이 북핵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섣부르게 핵 군축을 선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