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09월30일 08시00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한미약품(128940)이 10년 전 미국 제넨텍에 기술수출한 항암 후보물질 ‘벨바라페닙’의 해외 권리를 돌려받게 됐다. 제넨텍이 벨바라페닙 개발 중단을 공식화한 때는 2024년 4월이지만 실제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개발을 멈춘 후보물질의 해외 권리를 되찾는 데만 약 2년8개월이 걸렸다.
개발 중단과 권리 반환 사이에는 후속 개발 여부를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시간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느냐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기술수출 계약에서 선급금과 마일스톤 못지않게 파트너가 개발을 중단했을 때 원개발사가 일정 시점에 권리를 회수할 수 있도록 계약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약품은 지난 29일 제넨텍으로부터 벨바라페닙 기술이전 계약 해지 및 권리 반환을 통보받았다고 공시했다. 계약 해지는 통보일로부터 90일 뒤인 오는 12월 27일 효력이 발생한다. 양사는 이때까지 벨바라페닙 관련 책임과 권한을 원활하게 이양하기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벨바라페닙은 2016년 9월 한미약품이 제넨텍에 기술수출한 표적항암제로, 당시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최대 9억1000만 달러(계약 당시 약 1조원)에 넘겼다. 이중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은 8000만 달러(수령 당시 약 938억원)로, 한미약품은 같은 해 12월 선급금을 수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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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중단과 권리 반환 사이 2년8개월
벨바라페닙은 종양 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관여하는 미토겐 활성화 단백질 키나아제(MAPK) 경로의 RAF를 억제하는 경구용 표적 항암제다. 제넨텍은 기술도입 이후 다양한 고형암을 대상으로 벨바라페닙 개발을 진행했지만 2024년 4월 추가 환자 모집을 중단하고 로슈의 개발 파이프라인에서도 제외했다.
당시 제넨텍을 포함한 로슈그룹은 항암 연구개발(R&D)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제넨텍은 벨바라페닙을 파이프라인에서 제외한 지 약 4개월 뒤인 2024년 8월 독립적으로 운영하던 암면역학(Cancer Immunology) 부서를 없애고 관련 기능을 분자종양학(Molecular Oncology) 부문과 통합했다.
다만 벨바라페닙 개발 중단이 계약 종료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미약품은 당시 “계약 해지나 물질 반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넨텍과 향후 임상 개발 방향을 계속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양사는 벨바라페닙의 향후 개발 방향을 논의했지만 제넨텍의 개발은 재개되지 않았고, 약 2년5개월이 지난 이번에 계약 해지와 권리 반환이 통보됐다. 실제 계약 종료와 권리 반환은 다시 90일의 통보기간을 거친 오는 12월 27일 이뤄진다.
한미약품은 이번 반환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번 공시는 이미 수년 전 제넨텍이 개발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던 사항의 계약상 종결 절차이자 예견됐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한미는 벨바라페닙을 흑색종 치료를 위한 경구용 항암제로 개발하기 위해 국내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신약개발 부문에서 권리 반환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을 창출하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개발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던 2024년의 설명과 달리 이번에는 당시 개발 중단을 이번 계약 종료의 출발점으로 설명한 셈이다.
오히려 한미약품의 설명은 개발 중단과 실제 권리 반환 사이에 발생한 2년8개월의 시차를 주목하게 한다. 권리 반환이 예견된 계약상 종결 절차이면서 동시에 후속 개발의 새로운 기회라면, 개발을 중단한 파트너로부터 해외 권리를 얼마나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느냐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계약은 어땠나…권리회수 장치에 쏠린 눈
제넨텍의 다른 기술도입 계약에서도 개발 중단과 계약 종료 사이에 시차가 발생한 사례는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젠코(Xencor)의 ‘에프발로펜데킨 알파’가 대표적이다. 로슈는 2025년 1월 이 후보물질을 개발 파이프라인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제넨텍이 젠코에 계약 해지를 공식 통보한 것은 2026년 3월 4일이며, 이후 6개월의 통보기간을 거쳐 같은 해 9월 4일 계약이 종료됐다. 파이프라인 제외부터 계약 종료까지 약 1년8개월이 걸렸다.
따라서 제넨텍이 파이프라인에서 후보물질을 제외했다고 해서 해당 라이선스 계약이 곧바로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벨바라페닙은 젠코 사례와 비교해도 실제 권리 반환까지 약 1년이 더 걸렸다.
신약개발 산업에서 1년은 시장의 흐름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글로벌 제약사의 관심은 특정 표적이나 치료 방식의 임상 성과에 따라 빠르게 이동하고 이에 따라 기술이전과 투자 수요도 달라진다. 특히 항암제는 1~2년 사이에도 경쟁구도가 크게 바뀔 수 있다. 벨바라페닙이 개발되는 흑색종 분야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암세포를 겨냥하는 후보물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권리 반환이 늦어지는 사이 후보물질 자체의 가치가 바뀌지 않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글로벌 제약사의 관심과 기술이전 수요는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제넨텍의 다른 기술도입 계약에서는 계약 종료 시점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릴레이 테라퓨틱스는 2024년 7월 11일 제넨텍으로부터 SHP2 저해제 ‘미고프로타피브’의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계약에 따라 해지는 통보 180일 뒤인 2025년 1월 7일 효력이 발생했고, 이 시점부터 양사의 개발·상업화 의무와 제넨텍에 부여됐던 라이선스도 종료됐다.
기술수출 계약에서는 파트너가 후보물질 개발에 일정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는 개발 의무(development diligence)와 개발 중단의 기준, 원개발사의 해지권, 해지 통보 기간과 권리 반환(reversion) 절차 등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정하는지가 중요하다. 파트너가 개발을 포기했을 때 원개발사가 자산을 신속하게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계약마다 개발 단계와 역할 분담, 해지 조건이 달라 반환까지 걸린 시간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벨바라페닙의 경우 제넨텍이 개발을 중단한 뒤 언제까지 후속 개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는지, 일정 기간 개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미약품이 계약을 종료하거나 해외 권리를 회수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한미약품과 제넨텍이 최근 새로운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벨바라페닙 사례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한미약품은 지난 8월 비만·대사질환 치료 후보물질 ‘HM17321’을 제넨텍에 최대 23억 달러(약 3조12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제넨텍은 이번에도 HM17321의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제조·상업화 독점권을 확보했다. 한미약품이 임상 1상을 마친 뒤 임상 2상부터는 제넨텍이 개발을 맡는다.
벨바라페닙과 HM17321은 후보물질과 개발 단계가 다르지만 해외 개발의 주도권을 제넨텍에 넘긴다는 점은 같다. 다만 HM17321의 세부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아 개발 중단 시 해지 및 권리 반환 절차가 벨바라페닙 계약과 어떻게 다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제약·바이오 기술이전 거래를 자문하는 한 변호사는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기술이전 계약 과정에서 파트너사가 개발을 중단했을 때 권리를 얼마나 빨리 회수할 수 있도록 계약을 설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신약개발 분야는 특정 표적이나 치료 방식에 대한 관심과 투자 트렌드가 빠르게 바뀐다. 글로벌 제약사가 개발을 중단한 뒤에도 권리를 장기간 보유하면 원개발사가 권리를 되찾았을 때는 이미 해당 기술이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져 새로운 파트너를 찾을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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