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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미술평론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1532∼1625).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다. 르네상스와 이탈리아, 그 시공간은 전혀 낯설지 않지만 이 이름은 대단히 낯설다. 그 까닭이라면 이 화가, 이 화가의 작품이 제 이름을 찾는 데 수세기가 필요했던 사정을 들 수 있다. 왜 감춰져 있었을까. 그 시대에 여성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나치게 빼어난 재능을 가진.
앙귀솔라의 그림 한 점 먼저 보자. ‘체스 게임’(1555)은 여섯 자매 중 맏이였던 앙귀솔라가 자신의 여동생 셋이 체스를 두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세 자매가 조그만 체스판 사이에 둘러앉아 있고, 그 뒤에 유모로 추정되는 이가 어깨너머로 흐뭇하게 지켜본다. 왼쪽에 앉은 큰 동생은 방금 작은 동생이 놓은 말을 쥐어 보이며 그림 밖 누군가를 향해 슬며시 미소를 던진다. 이에 상대인 작은 동생은 손을 번쩍 치켜들어 이의를 제기하는 참인데, 그 발끈한 표정에 가운데 앉은 어린 동생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승리를 확신하는 언니와 발끈한 동생, 그 실랑이가 우스워 웃음을 터뜨리는 막내까지 화폭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생해 그네들의 말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이 생생한 장면을 그린 이는 화면 안에 없다. 세 자매의 맏언니인 스물세 살의 앙귀솔라는 화면 밖에서 이들을 그리고 있었으니, 큰 동생이 미소로 마주보고 있는 대상이 맏언니 앙귀솔라였던 셈이다.
왁자지껄한 초상화…100년 뒤 유행할 풍속화 예고
‘체스 게임’이 보여주는 가족초상화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체스라는 것이 당대에는 남성들의 지적 전략이 벌어지는 상징이어서, 그림 속에 여인이 등장하더라도 대개는 남자의 상대로, 그것도 짐짓 수줍고 소극적인 자태로만 배치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앙귀솔라는 오직 여인들만으로 화면을 채운 뒤 서로 겨루고 즐기는 능동적 주체로 그려놨으니 말이다, 단순히 한 가문의 오붓한 정경을 기록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지성과 자족적인 세계를 당당히 펼쳐놓은 것이다. 게다가 이토록 생생한 일상의 그림이라니, 이미 100년 뒤에야 유행할 풍속화를 예고하기도 했던 것이다.
20대 초년에 이런 그림을 그린 앙귀솔라는 이후 자신의 생애 곳곳에 자화상을 남겨놨다. 스물넷 안팎의 자신만만한 ‘이젤 앞의 자화상’(1556)에서 앙귀솔라는 장신구 하나 없이 흰 레이스깃과 소맷단만을 두른 검소한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왼손에는 말스틱(화가가 작업할 때 손을 받치는 데 쓰는 가느다란 막대)을 쥐고서 화폭에 막 한 획을 그으려다 문득 고개를 돌린 것처럼 보인다.
캔버스에 색을 올리는 능동적 주체로 스스로를 그려낸 앙귀솔라가 자화상 속에 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성모자상이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다정히 안아 입 맞추려는 종교화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앙귀솔라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성모자상은 일상적인 초상화와는 다른, 더 높은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자화상은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담은, 미술사에서 손꼽을 만큼 이른 시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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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앙귀솔라의 아버지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에게 딸의 습작을 보내 평가를 부탁하기까지 했다. 미켈란젤로와의 교분이야말로 앙귀솔라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이라 할 만하다. 스물두 살 무렵 앙귀솔라가 웃는 소녀를 그린 습작을 미켈란젤로에게 보내자 노대가는 이번엔 우는 소년을 그려보라고 했다. 우는 얼굴이 웃는 얼굴보다 훨씬 그리기 어렵다는 것을 흘린 셈이다. 이에 앙귀솔라는 게에게 손가락을 물려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년의 모습을 그려 보냈는데, 이 그림을 위해 일부러 남동생을 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는 앙귀솔라의 재능을 대번에 알아봤다. 이후 자신의 소묘첩을 선뜻 내주며 베껴 그리게 하곤 그 결과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앙귀솔라가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은밀하고도 값진 가르침이었다.
그 수련의 성과가 마침내 앙귀솔라를 알프스 너머 스페인으로 이끌었다. 1559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1527∼1598)가 앙귀솔라의 명성을 전해 듣고 사람을 보낸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미술사가라고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1511∼1574)가 1568년에 펴낸 ‘미술가 열전’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스페인) 국왕은 앙귀솔라를 큰 예우로 스페인까지 데려갔고, 넉넉한 봉록을 줘 왕비의 곁에 두었으니, 온 궁정이 앙귀솔라의 탁월함을 하나의 기적처럼 우러렀다.”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 스페인 궁정으로 가기 위해 짐을 꾸리면서 앙귀솔라는 인생의 절정에 오른 듯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스페인에 당도한 앙귀솔라는 이제 막 펠리페 2세의 세 번째 부인이 된 프랑스 출신 어린 왕비(발루아의 엘리자베트)의 말벗이자 그림 스승이 됐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국왕 일가의 초상을 도맡아 그리는 실질적인 궁정화가가 됐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역사의 씁쓸한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앙귀솔라는 귀족 신분이었던 까닭에 장인의 부류로 나뉘는 궁정화가라는 공식 직함을 끝내 얻지 못한 채 그저 ‘왕비의 귀부인’으로 궁정에 머물러야 했다. 게다가 스페인 궁정에서는 공식 초상에 서명을 남기지 않는 관행이 있었고, 서명 없는 궁정 초상화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그 시절의 공식 궁정화가였던 다른 남성 화가들의 작품으로 귀속됐던 것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펠리페 2세의 초상’(1565)마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앙귀솔라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다른 화가의 이름을 달고 떠돌던 그림들 가운데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이 실은 앙귀솔라의 작품이었는지, 이제야 하나씩 되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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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귀솔라가 궁정에서 감당한 화가로서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왕비의 초상은 물론 국왕 펠리페 2세를 비롯한 왕족의 얼굴들을 거듭 화폭에 옮겼다. 이 일은 고향에서 그리던 정겨운 가족 초상과는 사뭇 달랐다. 왕실의 초상이란 정교한 직물의 무늬 한 올, 보석의 광채 하나까지 빠짐없이 재현해야 하는 지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앙귀솔라는 그 격식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자신의 천품만은 잃지 않았다. 앙귀솔라가 그린 왕비 엘리자베트의 초상은 훗날 스페인에서 가장 널리 모사된 그림이 돼 루벤스와 같은 대가들까지 베껴 그렸으니 그 재능이 어땠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이탈리아 메디치가문 출신 교황 피우스 4세마저 앙귀솔라가 그린 왕비의 초상을 청했던 것을 보면 명성은 이미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선 셈이었다.
이토록 뚜렷한 족적을 남긴 화가가 어찌해서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잊혔어야 했을까. 이는 비단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남성을 중심으로 촘촘히 짜인 화파의 계보 속에서 여성 화가의 자리는 애초에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라는 찬란함의 이면에 지워졌던 앙귀솔라는 이제야 제 이름을 미술사에 내걸었다. 딸의 재능을 규방에 묻어두지 않기로 결심했던 아버지의 헌신, 안락한 삶에 안주하길 마다하고 알프스 너머 이국의 궁정까지 건너가 직업 화가가 되고자 했던 한 여인의 뜨거운 의지가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 이젤 앞에서 붓을 든 채 문득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던 그 젊은 화가의 맑고 총명한 눈빛이, 400여 년을 건너 비로소 온전히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이윤희 미술평론가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미술관에서 마주친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수많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였다.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로 출발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이화여대·추계예대 등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며 오래전 렘브란트의 감동을 넓혀가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2022),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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