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형제가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 김준홍(48)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공모해 2008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SK텔레콤(017670), SK C&C(034730) 등 계열사에 엉터리 펀드를 만들게 하고, 정식 펀드 결성 전에 선지급 된 돈 465여억 원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원심에서는 최재원 부회장은 무죄를 받았고, 김원홍 전 고문의 역할은 드러나지 않았다. 왜 바뀌었을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중요 진술이 바뀌었고, 핵심 증거들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소심이 밝힌 범죄의 재구성에도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소심이 인정한 범죄 사실은 이 사건의 공동피고인인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의 진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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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동기, 형에서 동생 투자금으로 바뀌어
원심과 검찰은 최태원 회장(형)의 개인투자금 마련을 위한 회삿돈 횡령 사건으로 봤다. 2008년 5월부터 형은 SK C&C 주식을 담보로 (김원홍에게 보낼) 투자금을 마련하려 했으며, 이후 이뤄진 저축은행 대출도 명의는 동생이나 SK재무실과 협의한 만큼 형이 주체이고, 이 사건 범행도 2008년 10월 초 형이 김준홍 전 대표를 불러 펀드출자를 약속해주면서 500억 자금 마련(횡령)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원심은 “내가 불법송금을 지시했다”는 동생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며, 최재원 부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태원 회장에게는 징역 4년, 범행에 적극가담한 김준홍 전 대표에게는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2008년 이후 김원홍 전 고문과 형의 교류는 소강상태였고, 동생과 밀착되기시작했다고 봤다. 동생과 김 전 고문은 2008년 4월에 형 명의의 SK C&C 주식을 담보로 한 자금조달을 김준홍 전 대표에게 부탁했고, 그룹지배권 문제로 주식담보가 어려워지자 SK C&C 주식담보없이 투자금을 마련할 방법을 찾던 중 회삿돈 펀드구성과 횡령범행이 계획됐다고 밝혔다. 범행동기는 동생 투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나, 김 전 고문이 형에게 펀드출자 및 선지급 방안을 설명해 형이 승낙한 만큼 형도 유죄라고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장인 문용선 부장판사는 “무죄인 동생이 무죄인 형을 위해 거짓 자백을 했을 리 없다”며 동생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또 “최태원 피고인 역시 펀드 돈의 횡령의도를 알았고, 계기가 된 펀드 출자 및 선지급은 최태원 피고인 영향력에 따른 것”이라며 형에게도 원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다만, 범행을 자백했다며 김준홍 전 대표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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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홍만 믿고 제3의 가능성 무시, 김원홍 증인채택거부 비판도
항소심은 범행을 재구성하면서 ▲최 회장의 당시 재무상황이 검찰이 주장했던 것처럼 심각하지 않았다는 점 ▲최 회장이 2008년 초 이후 김원홍 전 고문과 별로 교류하지 않았다는 점 ▲2008년 10월 27일 최 회장과 만난 뒤, 최 회장이 SMS를 보내 펀드 투자금을 챙기기도 했다는 김준홍 전 대표의 진술이 있다는 점 ▲회장 형제가 둘 다 무죄라면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김준홍 전 대표를 왜 위증죄로 고소하거나 더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겠냐는 점 ▲무죄인 동생이무죄인 형을 위해 거짓 자백했겠느냐는 점 ▲김준홍 전 대표가 동생의 유죄를 구체적으로 진술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최 회장이 김원홍 전 고문과 소원해지고 당시 재무상황도 개인투자금으로 1~2달 쓰기 위해 회삿돈으로 펀드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김준홍 전 대표를 위증죄로 고소하지 않은 이유는 재판 막바지까지 김 전 대표의 진술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실제로 항소심 막바지까지 김준홍 전 대표는 최 회장은 펀드 돈의 횡령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고 생각했다”, “알았을 것 같다” 등 상반되게 진술한 바 있다.
동생이 거짓으로 자백한 이유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최재원 부회장은 항소심 법정에서 “김원홍 전 고문이 빠지면서 송금지시 역할을 제가 안 하면 회장님이 구속된다는 말을 들을수 밖에 없었다”며, 후회한다고 증언했다. 최 부회장 변호인은 “A라는 사람이 살인을 했다면 기본적으로 시간, 장소 등에 대해 증거 조사가 있어야 한다”며, 김준홍 전 대표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재판부를 비판했다.
한편 항소심은 최 회장 측이 제기한 465억 원 횡령금을 건네받은 김원홍 전 고문에 대한 증인채택요구를 거부한 채 선고를 강행했다. 바로 어제 국내에 강제송환된 김원홍 전 고문이 검찰조사나 별도 재판 과정에서 다른 말을 한다면,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대법원 상고심에서 변론권 제한 논란이 불거질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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