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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전 장관은 영국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홍콩에 중국 오성홍기가 걸린 1997년 7월 1일 공식 취임했다. 그는 당시 취임사에서 “홍콩은 역사를 새로 쓸 신경로를 개척하는 위대한 영광이자 도전 과제를 받아들였다”며 “우리는 이 도전을 극복하고 더 밝고 나은 미래를 건설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상하이 출신의 둥 전 장관은 ‘일국양제(1국 2체제)’ 체제 아래서 홍콩을 이끈 첫 번째 지도자다. 해당 정책은 옛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 본토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개인의 자유를 최소 50년간 보장받도록 설계된 제도다.
행정장관 재임 기간 둥 전 장관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민주화 시위와 2003년 사스(SARS) 사태 등 위기도 맞았다. 특히 2003년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려 하자 약 50만명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2024년에야 통과됐다.
둥 전 장관은 주택 수요 충족을 위해 매년 8만 5000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단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 계획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맞물리며 부동산 폭락 원인으로 지목받아 비판을 사기도 했다. 현재 홍콩의 주거비 부담이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상황에서 당시 둥 전 장관의 정책에 대한 공과는 여전한 논쟁거리다.
2004년 12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둥 전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국정 운영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심 이반과 더불어 중국 본토의 신임까지 흔들린 영향이다. 결국 둥 전 장관은 2차 임기 중간인 2005년 사임했다.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사임 후 둥 전 장관은 중국 최고 정치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에 임명됐고, 이어 2014년엔 싱크탱크 ‘우리홍콩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중국 특별행정구의 전직 수반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추모식의 격식과 장소, 시진핑 국가주석의 추모 행사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유족으로는 부인 베티 치우훙핑 여사와 자녀 3명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