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가습기살균제 보고서 조작' 교수에 무죄 확정

최영지 기자I 2021.04.29 12:01:29

사기 혐의만 유죄…징역 1년·집행유예 2년 확정
法 "직무 위배 부정행위·형사사건 증거위조 인정 어렵다"
"자문료, 연구 관련 대가성 갖는다고 보기 어려워"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가장 많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로부터 뇌물을 받고 옥시에 불리한 실험결과를 누락하는 등 보고서를 왜곡한 혐의를 받는 서울대 교수에 대해 무죄 판단이 나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달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환경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제3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수뢰후 부정처사·증거위조 등 혐의를 받는 서울대 수의학과의 A 교수 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어 검사와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로써 수뢰후 부정처사·증거위조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고, 연구비를 편취한 사기혐의만 유죄로 최종 판단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됐다.

지난 2011년 정부가 옥시가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가능성을 인정한 직후, 옥시는 2000년 이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대 산학협력단 등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때 A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지정돼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흡입독성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옥시로부터 “우리 가습기살균제가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할 경우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점과 폐손상이 가습기살균제가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조사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았고, 자문료 명목으로 1200만 원 상당을 받았다.

이후 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에 독성이 있음을 확인하고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고, 2014년 옥시 측은 이를 누락한 보고서를 형사사건에서 혐의를 부정하는 자료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또, 비용에 대해선 연구와 무관한 용도에 사용했음에도 이 사건 연구에 지출하는 비용인 것처럼 연구비를 편취해 사기 혐의도 함께 받았다.

1심은 A 교수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2년을 선고했고 벌금 2500만 원, 추징금 1200만 원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자문료 명목 돈 전부가 불가분적으로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질을 갖는다”며 “옥시 측 이해관계에 따라 이 사건 최종결과보고서에 옥시 측에 불리하거나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일부 실험데이터를 고의 누락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판시했다.

증거위조 혐의에 대해서도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준칙 및 규범을 위배해 이 사건 최종결과보고서의 내용과 증거가치를 변경했다고 인정된다”며 “증거위조죄에서의 새로운 증거 창조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2심은 A 교수가 최종보고서에서 간질성 폐렴항목 등을 삭제한 것이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은 “대조군과 비교해 투여물질에 의한 차별적인 병변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를 최종보고서에서 삭제했다고 해 연구자의 과학적인 판단 재량을 벗어난 부당한 행위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준칙을 위배하거나 판단재량을 일탈해 부당하게 시험데이터를 누락하거나 결론을 도출했다고 볼 수 없다”며 증거위조 혐의도 무죄 판단했다.

결국, 옥시로부터 받은 자문료가 연구와 관련해 대가성을 갖는다고도 보지 않았고, 사기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과 같이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연구를 수행하고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직무를 위배한 부정한 행위를 했다거나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위조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받은 자문료가 자문료로서의 성질을 넘어 이 사건 연구와 관련된 직무행위의 대가로서의 성질을 가진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봤다”며 “공소사실 중 ‘수뢰후부정처사’ 및 ‘증거위조’의 점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단을 수긍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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