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김모(67)씨는 이른 불볕더위로 불면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예년보다 빠르게 찾아온 무더위에 영등포 쪽방촌 일대에는 이씨와 마찬가지로 밤잠을 설치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제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요란한 비까지 예고된 상황. 날씨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지만 주민들은 뾰족한 대비도 없이 여름을 맞고 있었다.
|
주거취약지인 쪽방촌 주민의 어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에어컨과 쿨링포그(물 안개 분사장치인 안개형 냉각수) 지원 등을 해줬지만 더위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기하씨는 “지난 여름 7~8월 무렵에 서울시가 쪽방촌 집 복도에 에어컨을 달아주긴 했다”면서도 “방이 3개 이상은 붙어 있는 복도에만 설치돼 두 개짜리 방이 있는 집은 여전히 에어컨을 쓸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최모(64)씨는 “다리가 아파서 붕대를 감아두고 있는데 땀에 젖으면 붕대가 축축해지고 다리 상처난 곳은 더 아프다”고 하소연했다.지난 18~19일 연이틀 서울에 내려졌던 폭염주의보는 해제됐지만 이젠 비가 또 걱정이다. 특히 올해엔 기상이후로 천둥번개를 동반해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자주 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비 역시도 걱정거리다. 김씨는 지난해 옆집에 살던 50대 중반 남성이 비오던 늦은 밤, 병원에 실려갔다고 얘기했다. 이씨는 “방이 바닥에서 20cm 정도 위에 있는데도 빗물이 복도에 차고 넘쳐서 방 안에 옆으로 누워자던 아저씨의 코까지 찾다더라”라며 “응급실 실려서 병원에 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기하씨는 “우린 가스레인지가 없어서 부탄가스가 소중한데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가스가 망가져 못 쓰게 된다”며 “밖에 내놓은 부탄가스들에 비닐을 씌워놨지만 폭우가 오면 어찌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영등포역 인근 시장에서 좌판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역시 더위와 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꽃장사를 하는 정모(72)씨는 “햇볕에 꽃이 금세 시들어버려서, 보통 2주 정도 가던 카네이션을 일주일도 안돼 버리고 있다”며 “이것 봐라, 오늘 내가 잘라 버린 꽃대가 한 봉다리”라고 했다.
상인들이 더 두려워 하는 건 더위보다 비였다. 정씨는 “비폭탄을 맞으면 꽃이 바로 상해버려서 아예 장사를 접고 안 나올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40년째 좌판 어묵 장사를 해 온 70대 이모씨는 “더우면 어묵이 빨리 상하지만 꾸역꾸역 팔긴 하는데, 비가 억수로 내리면 그날 장사는 아예 못한다”고 우려했다. 과일장사를 하는 60대 이모씨는 “더우면 밤에라도 어디서든 팔겠는데 비가 밤낮없이 오면 장사를 접어야 한다”며 “작년에도 비가 많이 올 땐 어디 들어갈 데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올해 여름이라고 뭐 달라지거나 준비한 게 없다”고 한숨 쉬었다.
한편 기상청은 이날 밤부터 오는 21일까지 저기압 영향으로 전국에 10~60㎜ 가량의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일부 지역에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봤다.